그림자가 드리우다
엄마가 떠나고 한 달이 지났다.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5월의 싱그러운 녹색을 마구 뿜어냈다. 학교 가는 길가의 라일락은 여전히 짙은 향기를 풍겼고, 아이들은 재잘거리며 뛰어다녔다. 그 모든 풍경이 나에게만 흑백 필터가 씌워진 듯 희미하고 무감하게 다가왔다. 빛과 그림자. 엄마가 계실 때의 세상이 온통 빛이었다면, 지금은 그 빛이 사라진 자리에 너무나 선명한 그림자만 남아 있다. 그림자는 바로 '나'이다. 한부모 가정의 아이는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신 불쌍한 아이,라는 그림자로 학교에 길게 드리워졌다.
나는 애써 평소와 똑같이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아침에 일어나 아빠가 차려준 서툰 토스트를 씹고, 교복을 입고서 로봇처럼 현관을 나섰다. 모든 행동은 기계적이었다. 내 안의 어떤 중요한 부품 하나가 빠진 채, 그저 외부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태엽인형 같았다. 학교에 도착하면, 복도에 있는 아이들의 시선이 전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눈빛은 나를 '특별한' 존재로 구별짓고 있었다. 그것은 왠지 모르게 불편하고, 나를 벽뒤 어딘가로 숨어들게 만드는 낯선 감정이었다.
“예진아.”
복도에서 나를 부른 것은 같은 반의 김민서였다. 민서는 우리 반에서 가장 밝고 시끄러운 아이였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옷도 깔끔하고 예쁘게 입고 다녔다. 민서는 나에게 성큼 다가오더니, 여느 때처럼 친근하게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 요새 숙제 검사 왜 안 받냐? 선생님이 너한테 몇 번이나 물어봤는데.”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대답했다. “그냥… 정신이 없어서.”
“에이, 그래도 해야지. 너 원래 숙제 빼먹는 애 아니잖아.”
민서의 말은 정말 순수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드는 건 무슨 색의 마음일까. 민서는 내가 겪은 일의 무게를 전혀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닌가. 아마도 상상조차 감히 하지 못할 것이다. 엄마가 늘 옆에 있는 아이에게 엄마의 부재는 영화나 드라마 속의 단편 이야기일 뿐일 테니까.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웅성거림이 내가 자리에 앉는 순간, 잦아들고 앞자리에 앉은 여자아이 두 명이 슬쩍 뒤돌아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그 소리가 정확히 들리지 않았지만, 그들의 입 모양과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왠지 모르게 '암', '엄마', '혼자', 같은 단어들이 그들의 입술을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일부러 가방에서 책을 꺼내 펼쳤다. 마치 책에 모든 정신을 쏟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 애썼다. 초연할 눈은 글자 위를 맴돌 뿐, 내용은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책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엄마와 함께 도서관에 갔던 기억이 물밀듯 스며든다. 엄마가 내게 책을 읽어주던 목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그 기억들은 너무나 선명하고 따뜻해서 지금의 차가운 현실을 더욱 견디기 어렵게 만들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민서가 내 옆으로 의자를 끌고 왔다.
“너 표정이 왜 그렇게 어두워? 혹시 몸 안 좋아? 지난주부터 계속 말이 없네.”
나는 대답 대신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민서가 갑자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예진아, 너희 아빠는 괜찮으셔? 우리 엄마가… 너희 아빠 엄청 힘드실 거라고, 너라도 잘 챙겨줘야 한다고 하던데.”
그 순간, 나는 민서의 엄마가 우리 아빠를 동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동정에는 나에 대한 연민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갑자기 민서에게 화를 내고 싶어졌다. 그들의 시선과 잣대가 우리 가족을 '불쌍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참을 수 없었다.
“우리 아빠 괜찮아. 나도 괜찮고. 우리 집 문제에 신경 쓰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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