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면 더 생각나는 사람
모락모락 김이 나는 군고구마가 하얀 미소를 짓는 걸 보니 자기 시대가 오고 있음을 아는가 보다. 기세등등하던 태양도 고이 뒤로 물러섰다. 머플러가 본래의 쓰임을 발휘할 때가 왔다.
사람들은 뜨끈한 온돌방이 그립다지만 이맘때면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이 있다. 작지만 꼿꼿한 자세, 긴 머리를 틀어 올려 비녀를 꽂던 거울 속 안광은 혜안의 빛이 엿보였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잔상이다. 무릇 지혜란 것을 할머니는 몸소 보여주셨다.
일찍이 남편은 멀리 소풍을 떠난 질곡의 삶에서 발버둥이 쳤음에도 그 흔적은 알 수 없었다. 애늙은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당시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모진 풍파에도 의연한 그분을 지척에서 보며 단단한 바위 같아서 우러러보았다. 자식을 둘이나 가슴에 묻은 아린 아픔을 지녔으면서도 손자에게는 한없이 베풀며 따뜻한 눈빛만 주셨다.
나는 수학에 큰 재능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숫자에 기민하게 반응한다. 다가올 미래를 내다본 할머니의 거시적인 안목이 한몫했다고 짐작한다. 신기하게도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는 빠르게 손과 뇌가 협응 하여 바로 자판을 두드려 의심 많은 VIP 고객으로부터 뜻하지 않은 검은 의혹을 산 적도 있다. 오롯이 할머니 덕택이었다. 은행에서 근무하면서 숫자만큼은 능력자가 될 수 있었다. 계산도 계산이지만, 나열된 숫자를 복기하는 능력은 유용한 자산이 되곤 했다.
아픈 부모님의 사정으로 형제자매가 할머니 방에 얹혀산 세월이 제법 길었다. 그럼에도 한 번도 눈치를 본 적 없는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우리는 입을 모은다. 새벽에 기상해 몸을 정갈히 단장한 할머니는 짙은 풀색 군용 담요를 폈다. 두 손으로 화투를 착착 섞기 시작한다. 화투의 팥죽색 패를 제식 훈련하듯 줄 맞춰 깔아놓고 하나씩 뒤집어 하루 운세를 풀어냈다. 이른바 화투 점이다.
손자가 의기소침해 있으면 모아둔 동전 주머니를 짤랑거린다. 민화투를 치자고 선수 치며 초승달 눈으로 유혹했다. 십 원짜리 동전은 하멜른의 사내가 부는 피리처럼 우리를 민화투 속으로 몰아넣었다. 호승심을 사방에서 불러 모으며, 착착 서로 달라붙는 소리 속에 부모님의 부재가 자아낸 그리움을 깡그리 털어놓았다. 맏이인 손녀가 덧셈과 뺄셈을 할 수 있게 되자 할머니는 특훈을 시작했다. 그것은 ‘가보 띠기’였다.
‘가보’란 말은 화투에서 아홉 수를 이르는 일본어 ‘가부(かぶ)’에서 왔다고 한다. 사실 ‘가부(かぶ)’란 말도 포르투갈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나 화투가 일본에서 들어왔다는 것이 정설 같다. 가보 띠기도 일본에서 전래된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비(12), 똥(11)을 제외한 마흔 장의 화투로 9, 19, 29가 되는 짝꿍 수 셋을 맞춰 손안에 남은 화투장을 모두 비워낸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덧셈을 익힐 수 있었다.
할머니 선견지명에 힘입어 불과 몇 년 후엔 학원에 다닌 지 두 달 만에 주산 1단을 딸 수 있었다. 주산은 9가 되기 위한 짝꿍 수가 팔 할이라고 과장할 만큼 중요하다. 그뿐인가. 1단을 따기 위해 암산은 반드시 넘어야 할 관문이었다. 머릿속에 주판을 그리고 ‘넣기를’ 신호와 함께 불러주는 두 자리의 숫자들을 모두 합산해야만 했다. 가보 띠기가 정확히 추세를 꿰뚫어 적중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할머니가 길을 안내한 화투의 신세계로 엄동설한도 그리 춥지 않았다. 내기가 끝나면 즐거운 간식 시간이 이어졌다. 화롯불에서 알맞게 익은 고구마의 껍질을 벗겼다. 겉만 화려한 후식과는 다른 ‘정’이란 뜨거운 끈끈함을 호호 불며 삼켰다. 그리움에 걸신들린 듯 먹다가 사레가 들려도 괜찮았다. 할머니의 살얼음이 동동 뜬 동치미를 그릇째 들이켜면 쑥 내려갔다.
화투가 도박이란 멍에를 짊어지고 있다. 손을 자르지 않고 그 늪에서 벗어나려면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모든 것은 동전처럼 양면성을 지닌다. 누구는 탕진의 악습으로, 누군가는 즐거운 오락으로 화투를 마주한다. 우리에게 화투는 불안한 동심을 어루만져준 동화였다. 화투를 사이에 두고 양반다리로 마주 앉은 우리의 눈빛과 손짓은 순수한 열정과 소박한 사랑 고백이었다.
대나무처럼 꼿꼿한 할머니를 꺾은 것은 모정이었다. 먼저 간 막내의 주검 앞에선 그 기개가 꺾였다. 곡기를 끊으시더니 시름시름 앓던 어느 날, 들에 나가 나물을 잔뜩 캐 오셨다. 동네 사람들에게 나물과 당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 주셨다고 한다. 며칠 후 할머니는 아침에 기침하지 못했다.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몰래 떠나셨다.
모든 사람은 두 번 죽는다고 한다. 한 번은 육신이 죽을 때고, 그를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 죽을 때 비로소 죽는다. 화투를 볼 때면 할머니는 비녀를 꽂고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선연히 걸어 나오신다. 내 기억에서 할머니는 여전히 건재하시다.
어디선가 고구마 굽는 냄새가 콧속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을린 껍질을 벗고 김이 나는 노란 속살을 드러낸 고구마다. 어서 한입에 먹으라며 내민 손은 주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