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엄마' 되기는 참 어려워
얼마 전, 같이 일하는 분과 대화를 나누다 무척 어려운 질문을 하나 받았다. 막 3살이 된 첫 손녀의 육아를 종종 돕는 분이었는데, ‘할머니’를 ‘할미’라고 어설프게 말하기 시작한 아이가 너무 귀엽다며 한참을 말씀하셨다. 나도 발음이 부정확했던 그 시절의 내 아이를 떠올리며, 흐뭇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런 질문이 날아들었다.
“그런데, 정말. 육아가 그렇게 힘들어요?”
이미 두 자녀를 장성할 때까지 키워 손녀까지 본 그분은 육아처럼 행복한 일은 없었다며, 요즘 엄마들은 그렇게 육아가 힘들다고 하는데 그것 참 무척 궁금하다는 투였다. 나는 맞다고도 아니다고도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멋쩍게 웃고 말았다. 어느 쪽의 대답을 해도, 괜스레 죄지은 기분이 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육아가 무엇이다.’라고 단언하여 이야기할 수 있을까? 육아가 가진 특유의 양면성(?)은 그것을 경험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다. 10개월을 뱃속에 품고 있었던 아이가 태어나 꼬물대며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 ‘엄마’라고 처음 불러준 그날의 기억을 무엇과 바꾸겠는가. 하지만 반대로 자기도 인간이라며 고집을 피우다 뒤로 넘어가며 자지러질 때 속에서 천불이 나서 ‘나’라는 인간의 밑바닥을 보게 한 그 순간도 잊을 수가 없다.
저 질문을 받고 한동안 생각을 해 보았는데, 육아가 힘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책임감’ 때문인 것 같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신생아는 먹고, 자고, 싸는 모든 것을 부모가 챙겨줘야 한다. 걷기 시작하면 또 어떤가. 내가 어떤 옷을 입히는지, 무엇을 챙겨 먹이는지, 어떤 기관을 고르는지에 따라 아이의 모든 것이 결정된다. 나는 그것을 깨달았을 때, 너무나 큰 두려움을 느꼈다.
조리원 생활도, 산후도우미가 오시던 시절도 끝나고 덩그러니 세상에 나온 지 채 100일도 안 된 아기와 남게 된 적막한 거실에서 느꼈던 그 감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마치 내가 조금만 잘못해도 이 생명이 없어질 것만 같은 느낌. 나는 아직 ‘나 혼자’도 책임지기 버거운데, 나 따위가 이 작고 소중한 생명체를 온전히 책임질 수 있을까.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조금씩 나아지긴 했지만, 아이가 커감에 따라 부담감은 더해졌다.
얼마나 선택지가 많은 세상인가! 아이를 씻길 욕조 하나를 고르려고 해도, 그 쓰임과 효능, 질감과 재료까지 너무도 다양하다. 뭐 하나 잘못 골라 아이에게 해가 되면 어쩌나 엄마는 전전긍긍한다. 또 정보는 어찌나 많은지. 손가락만 움직이면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이다. 지금 이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무책임한 엄마라며, 업체들은 엄마들의 불안을 이용한다. 참으로 그 모양도 다양한 불안과 나는 아직도 싸우고 있다.
거기다 미디어는 은연중에 너무나도 완벽한 ‘요즘 엄마’를 보여준다. ‘요즘 엄마’가 되려면, 집밥도 뚝딱해서 플레이팅 해 놓고 먹을 줄 알아야 하며, 주말엔 아이와 외부 활동도 많이 나가야 한다. 사진은 필수다. 그리고 사회생활도 하면서 돈도 어느 정도는 벌어야 하고, 회사에서 직함도 하나 가지고 있으면 금상첨화다. 며느리로서 집안의 대소사도 잘 챙겨야 하고, 그 틈틈이 아이의 학교나 유치원 행사도 참여해야 한다. 아, 그리고 운동과 자기 관리도 놓쳐선 안될 일이다. 내가 조금 과하게 생각하는 걸까.
여러모로 예전과는 다른 세상이다. 아이를 둘도 셋도 낳아, 번듯하게 키워낸 우리 부모님들 세상에선 쉽고 당연했던 일들이 이제는 너무 어려워져 버렸다. 나 또한 엄마가 ‘밥 먹어!’라고 소리 지르며 부르실 때까지 동네 친구들과 땅따먹기를 하던 세대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놀이터의 낯선 눈을 걱정한다. 이제는 보호자 없이 아이를 돌아다니게 한다면, 부모의 책무를 다 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 물가는 한없이 올라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맞벌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는데 품은 더 들게 되었다니. ‘힘들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면, 나는 바로 ‘아니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가 우리 가족에게 주는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육아는 ‘한 사람의 인간’을 만드는 일인데, 이것이 힘이 들지 않는다면 그 또한 도둑놈 심보일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마음가짐의 문제'라는데, 모든 부모가 그 힘듦을 '과정의 즐거움' 정도로 여길 수 있다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