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찾아오면 시작되는 것들
며칠 전, 한동안 잠잠했던 그것이 다시 나에게 찾아왔다. 일하다 생긴 불가피한 ‘사건’때문이었는데 특별히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님에도 ‘왜 그렇게 생각하고 결정했을까?’라며 계속 곱씹게 되었다. 이렇게 내가 명명한 일명 ‘불안증’이 찾아오면, 그 패턴은 보통 일정한 편이다.
불가피한 일(사건) -> 심장이 빠르게 뜀(쿵쿵) ->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음(과호흡) -> 잠이 오지 않음(불면) -> 일생생활 무너짐(멘붕)
나는 그날 밤, 내가 회사에 막심한 손해를 입혔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실제로 아직 그 일이 손해가 될지, 아무 조치없이 끝날지 알 수 없다. 아마도 내년까지도?)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 ‘나는 왜 이 모양이지?’까지 갔던 것 같다. 사실 며칠이 지난 지금은 이 문제가 이렇게까지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불안함이 훅 올라오는 날에는 도무지 내가 내 정신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혼자 마구 날뛰는 모양새가 되고 만다.
밤새 뛰어대는 심장에 눈은 감고 있었지만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고, 수면용 영상 소리를 귀에 꽂은 채로 뒤척이던 나는 몇 번을 일어나 걷다 눕기를 반복했지만 결국은 새하얗게 밤을 지새우고 말았다. 그 다음날 출근해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음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하루의 밤샘은 그 여파가 2~3일 지속되었고, 나는 주말을 온전히 쉰 뒤에야 그 사건이 ‘어쩔 수 없었던 일’ 임을, 그저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면 될 일’ 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20대의 끝자락에 시작된 이 증상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찾아와 나를 괴롭힌다. 뼈아픈 자아성찰이지만, 이 증상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내가 항상 ‘회피’라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겠다. ‘잠적’, ‘퇴사’, ‘결혼(잉?)’, ‘육아’ 등. 나는 '나'를 바꾸지 않고 그저 '자리'만 옮겨 가며, 피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여기는 괜찮겠지?’하면서. 하지만 삶이 계속되는 한, 고민과 불안 그리고 걱정은 계속된다.
본질이 바뀌지 않는데 어찌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언젠가 숨을 쉴 수 없어 찾아간 상담센터에서 나는 거의 울부짖으며 내 문제를 토해냈는데, 상담사는 중간중간 ‘내가 그 당시 느낀 감정’이나 ‘내가 했어야 할 행동’을 제삼자의 시각에서 말해보라며 다독였다. 나는 울다가도 그 상담사가 시키는 대로 상황을 설명하고 정리하며, 감정을 추슬렀는데 조금씩 진정이 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상담 후 결제해야 할 비용을 듣고는 완벽하게 제정신을 차렸던 기억이 있다.
불안은 나에게만 특별히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불안은 찾아오고, 그들도 그것과 함께 살아간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한 번씩 훅 찾아오는 불안에 내 소중한 며칠을 고스란히 빼앗기고 만다. 아이와 웃으며 눈맞춤 할 소중한 시간까지도 말이다. 오늘도 나는 이 글을 쓰며, 또 '나는 왜 이러는 걸까’로 가려는 나를 붙잡아 이 불안을 다시 한번 더 조물조물하여 다루기로 결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