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모든 것에는 그 이유가 있다.
지난주, 아이 유치원에서 2학기 상담이 있었다. 나는 늘 하던 대로 미리 아이에 대해 여쭤볼 것들을 정리하여 메모를 해 갔고 정해진 시간을 맞추기 위해 퇴근 후 택시를 탔다. 작년까지만 해도 새로운 환경이었던 유치원이 나에게도 너무 익숙한 공간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편하게 담임선생님과 마주 앉아 내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을 하나 툭 던졌다. 그런데,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며 별일 아니라는 듯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 원래 얘들 다 그래요. 차차 나아질 거예요."
아이가 하나뿐이라 비교군이 없는 나로서는, 6세 반만 7년 했다는 이 선생님의 한 마디가 큰 위로가 되었다. (사실, 남편도 자주 하는 말이지만 크게 와닿지 않는 것은 왜일까.) 그 이후에 자잘한 걱정들이 더 있었지만, 나는 그냥 메모지에 있던 눈을 거두고 담임 선생님과 '어머, 웬일이야.'모드가 되어 아이에 대해 웃으며 떠들었다. 본래 흥이 많은 우리 아이는 원에서도 춤추고 노래하기 일쑤인 것 같은데 그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봐주시는 선생님이 너무 고마웠고, 원에 완벽 적응해 집처럼 편하게 지내는 것 같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내 아이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세심히 관찰한 선생님과 대화하는 이 시간이 무척 감사했다.
아이의 첫 기관이었던 어린이집에서는 한 선생님이 관리해야 하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다. 2세에는 3명, 3세에는 5명, 4세에는 7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그런데 유치원에서는 5세 반 인원이 무려 15명이었다. 나는 '한 선생님이 그 많은 인원을 다 돌본다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생각에, 입학 전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유치원을 왜 다른 말로 '처음 학교'라 하는지 깨닫게 된 후, 이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유치원 입학 후 얼마 안 된 어느 날 아이에게 특이사항이 있어 그 내용을 유치원에 전달하는데, 선생님의 태도가 어쩐지 조금 불편했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소통한 바에 따르면, 선생님들은 아이에게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하려 했고 그에 맞게 아이를 보육하려 노력했다. 어쩌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피드백이 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이에게 이런 이슈가 있어요.'라고 말하는 나에게 딱히 별다른 말은 하진 않았지만, 유치원 선생님은 '그래서요? 어머니?'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느낀 이 감정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는데, 자기 몸보다 큰 가방을 메고 씩씩하게 유치원에 가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결국은 답을 찾게 되었다.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갑자기 바뀐 환경, 그리고 여러 규칙과 제한 등에 어려움을 겪던 초반을 지나 5세 중반이 된 아이는 또 한 뼘 자라고 있었다. 참고 기다리는 법을 알게 되고, 다른 친구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면서, 사회 구성원이 되기 전에 먼저 한 반의 일원으로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이 하나씩 자기 몫을 하게 하는 것이 목표이기에, 유치원은 한 반에 아이를 15명 배정하고 정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 아이에게만 맞출 수 없었던 것이다. 이를 깨달은 후, 지금까지 나는 그저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는 마음으로 유치원에 아이를 등원시킨다. 오늘 하루도 그저 평소와 같기를 바라며.
6세가 된 지금, 아이의 반 인원은 이제 23명이다. 23명의 아이들 중 한 명인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선생님에게 칭찬 한마디, 눈빛 한 번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그 순간들이 왠지 기특하다. '다 네가 원하는 대로만 될 수는 없어.'를 배우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노력을 해야 해.'를 새겨서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최선을 다 하는 ‘바른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아이의 매 해를 풍성하게 만들어 준 선생님들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