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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은희 Sep 01. 2023

산티아고일기(2023/01/12): 순례 12일차

오늘은 그랬던 날(부르고스 to 온타나스 32km)

호텔에서 편안한 하룻밤을 보내고 난 후,

오늘도 긴긴 하루를 혼자 오래 걸었다. 


부르고스에서 레온까지 약 200km는 스페인의 북부고원 메세타를 지나는 구간이다. 마을 간 이격겨리는 8~10km 될 정도로 멀고, 고원 가득 끝없이 펼쳐지는 밀밭 뿐이어서 5~10월까지는 걷기 힘든 구간으로 정평이 난 곳이다. 뜨거운 태양을 머리에 이고 하루 종일 걸어야해서. 


어쩌면 그래서 겨울이 걷기 좋은. 다만 올해처럼 겨울이 봄 같은 경우엔 비포장 순례길 곳곳에 물웅덩이와 진흙탕이 지천으로 많아 신발이 자주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기는 하다.


오늘은 메세타의 시작부에 해당하는 길. 큰도시를 빠져나와 약 10km까지는 도시의 연장으로 고가 인터체인지 사잇길을 걸어야했는데, 그 이후 약 150m 오르막을 오른 이후에는 목적지 온타리오까지 20km 이상을 밀밭 지평선이 하늘과 맞닿는 광경을 사방으로 볼 수 있었다. 저멀리 풍력발전기들이 줄지어 있는 곳이 고원의 가장자리인가보다 짐작할 뿐.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자리한 땅을 이베리아 반도라 불러왔지만 오늘의 느낌으로는 거의 대륙규모라 느껴질 정도다. 


대체로 밀, 토질이 좀 안좋은 곳은 보리나 감자를 재배한다는데 사람의 일이라기 보다는 기계로 파종하고 수확하고 비료나 농약살포는 비행기로 할 규모로 보인다. 경작지들이 아주 옥토라고 보기도 어렵다. 토양성분은 석회암 베이스에 역암에서 유래했을 자갈돌과 마사토로 보이는데, 길가에 그리고 밭 중간에 길게 늘어선 돌무덤(석회암)이 보인다. 저 돌을 고르는 것이야말로 기계 보다는 사람의 일이었을텐데 저 돌 고르는 그 세월은 숱한 농민들의 인고의 노력이 있었을 듯 하다.


철저히 혼자가 되기 위해 겨울 까미노를 혼자 걷기로 했고,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걸어왔다. 오늘은 처음으로 외롭다는 감정이 살짝 들었다. 잠깐 스쳐지나가는 길동무가 아니라 서로 기대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립다는 생각이 불쑥 들기도 했다.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어쩌면 그럴 때도 되었지 이 감정 이 감정대로 흘러가게 두기로 한다. 그런데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하니, 생각의 줄기를 잡고 사유의 실뜨개를 하고자 했던 시도도 계속 막힌다. 


'나는 왜 지금 이 길을 걷는가?'


질문은 질문으로만 반복될 뿐 답을 향한 사유에는 이르지 못하고 막힌 기분이다. 


끊없는 고원지대를 힘내서 빨리 걸어가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걷는 일이 조금 버겁고 외로움도 불쑥 사무쳐 생각은 나도 모르겠다~ 그냥 무념무상 걷는데 바빴다는. 그렇지만 이 또한 과정일 뿐 아직까지 걸어야 할 날도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도 아직은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구름이 가까이 있는 고도인데 사방으로 너무나 편평히고(평균 930m), 비현실적인 아득한 거리감 속에 마음의 길을 잃어버린 기분이지만, 그래도 오늘의 목적지까지 물리적 길은 놓치지 않고 무사히 걸어내었다.


그러면 된 것이다. 그러면 된 것이다. 오늘은 그랬던 날.


부르고스 대성당. 스쳐 지나갔다
대성당 옆 해돋이
산티아고순례길. 1993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
부르고스 도시의 끝에 이 장애인 여성의 동상이 서 있다. 장애인을 일상에서 지워버리려는 내 나라, 내 도시의 잔인함이 떠올라 부러 찍고 기록해 두려함
타르다요르 성당의 크리스마스 장식.
농촌마을이라서 농민의 수호 성인이 눈에 들어옴.
밀밭 옆 돌무덤. 밭에 골라낸 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었겠나.
석양이 아쉬워 막판에는 조금 천천히 걸어보았다.
7시간 반을 걸어서 목적지 도착

이명주 박사님 ! 혼자가 아니셔요. 이곳에서 함께하는 사람들 응원합니다.

그래서 힘드셔도 더 이렇게 사유의 시선으로 글 남겨주시잖아요. 홧팅

  => 봐 주셔서 감사하시지요.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매일매일 기록 남기게 됩니다. ^^

김태완 왜 걸으시냐고 묻고 싶었는데... 매일 이 기록을 기다리며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시간 많아진 백수되서 가능했던.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내려놓을 거, 끊을 거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네요. 두서없는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배성인 엄은희의 해방일지

  => 해방감을 찐으로 느끼는 중. 매력 있어요. 또 오게 될만큼. 담엔 같이 걸으시죠!! ㅎ

  => 글과 사진을 잘 다듬어서 책으로 출판하는 것도 좋을듯 하네요. 암튼 부럽~ 부럽~

  ==> 책 많은데 뭘 또. 그냥 다음 순례자를 위한 실물가이드로 족해요. 여튼 샘도 올 한해도 마음 건강, 몸 건강!!!

현명김 건강 잘 챙기며 걸으세요~! 발바닥은 괜찬으세요?

   => 이 포스팅 이틀 뒤 발바닥이 어제 40km 걷고 나니 처음 아팠다는!!! 발바닥, 발가락, 발목 잘 달래가며 남은 여정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해요 샘~ (행복한 육휴되시길 ^^)

이영수   덕분에 나날이 나도 산티아고를 걷고 있네. 힘들겠지만 엄청 부러워하는 용기없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음을 대견해해도 될 듯..

  => 읽어줘서 고맙네. 튼튼한 몸 만들어서 2~3월에 농활 함 갈께요~

윤신원 스스로 선택한 길. 지금껏 걸어온 길도, 이 길을 걷고 있는 지금도 충분히 대단해.

“그러면 된 것이다.” 네 말에 공감과 응원을 보낸다. ~~

이진숙 나는 왜 지금 이 길을 걷는가?!!

오윤홍 다시 오지 않을 순간~~~ 난 많이 부럽네~~^^. 그래서 언제온다고?

   => 2월1일 저녁 입국. 90일 무비자 혜택 딱 채워 들어갑니다~

김영희 오늘은 그랬던 날.

박번순 건강 조심하세요

   => 선생님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홍윤경 답은...그곳을 떠나온 후에 받을지도 몰라요....화이팅

이상민 사진 쭉 보고 있으니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요 ㅎㅎ건강하고, 즐겁게 여행 하세요 ^^. 응원합니다.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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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예요                        






Su Jin Lim 점점,, 순례자의 마음이 얼굴에서 느껴져요.


김익배 우리대한민국에선 장애인 은국민,시민이 아닌것 같네요. 굥정부와 국짐당이 정권잡으니 더더욱...

암튼, 무탈하게 바라는바 이루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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