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먹는 밥
언제나 바쁘고 쉬이 지치는 직장인에게 퇴근 후 요리는 쉽지 않은 과제다.
물론 식욕이나 의욕이 샘솟아 즐거운 마음으로 요리를 할 때도 있지만, 출퇴근이 반복되는 평일 대부분의 저녁 식사란 내 몸을 움직여줄 연료를 주입하는 행위에 가까울 때가 많다.
밥을 직접 해 먹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메뉴를 구상하고, 필요한 식재료를 골라내서 씻고 다듬어야 한다. 그러는 동안 물을 끓이고 육수를 우리고, 재료를 굽거나 볶는다. 요리가 완성되면 식탁을 치운 다음 밥과 국, 반찬들을 적당한 그릇에 담아 나르고 먹기 좋게 배치한다. 마지막으로 수저까지 놓아두면 밥상 차리기가 완결되는데, 그전에 "밥 먹자"라고 미리 말했다가 때로는 이런 일을 겪기도 한다.
"(방에서 나와 식탁을 힐끔 보고) 뭐야~ 아직 다 안 됐잖아. (소파로 가서 눕는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밥상 앞에 미리 나와 있지 않는 가족들을 왜 그리 답답해하는지 미처 몰랐다. 아마도 나 같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밥상 차리는 정성을 모르는 사람들. 그렇게 다 된 밥을 먹기만 하던 나는 혼자 살게 된 이후에도 요리에 능숙해지지 않아 배달음식을 시키거나 라면, 계란프라이 등 요리 과정이 거의 없다시피 한 음식들로 끼니를 때웠다.
그러나 저녁을 함께 먹을 식구가 생기고, 30대 후반이 되어서는 속이 편한 한식을 더 많이 찾게 되면서 밥 차려 먹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직장인이다 보니 다음과 같은 요령을 터득하게 되었는데, 이 세 가지만 알면 몸도 마음도 편해질 수 있다.
첫째, 간편식(레토르트 식품)을 최대한 활용할 것.
요즘은 가정간편식(Home Meal Replacement, HMR)이 굉장히 잘 나오는 시대다. 대표적인 간편식으로 햇반이 있는데, 특히 밥 지을 여력이 없을 때 요긴하다. 미역국, 김치찌개, 육개장 등 우수한 품질의 한식 레토르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아주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데다 맛도 상당히 좋다. 생선구이마저도 전자레인지 1분 조리로 완성되는 세상이다. 햇반에 좋아하는 반찬 몇 가지만 구비해 두면 퇴근길이 가벼워진다.
둘째, 시판 육수를 두루 활용할 것.
한국인의 밥상에 국이나 찌개는 기본값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이나 찌개를 끓일라 치면 조미료가 필요한데, 깊은 맛을 위해 멸치와 대파 뿌리, 무, 다시마 같은 천연 재료를 이용해 육수를 우리라고 하면 퇴근 후 뭐든 먹어 치울 수 있을 것 같던 왕성한 식욕도 단번에 사라진다. 나는 특히 코인 육수를 애용한다. 된장국, 김치찌개는 물론 계란찜이나 만둣국 등에도 두루두루 활용할 수 있다. 샤브샤브용 육수는 샤브샤브를 먹을 때 요긴하지만 어묵탕처럼 깊은 맛이 필요한 국물 요리도 빠른 시간 안에 가능하게 한다.
셋째, 집밥의 정의를 새로이 할 것.
집밥의 정의를 살펴보자.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집밥이란 "가정에서 끼니때 직접 만들어 먹는 음식"을 뜻한다. 그러나 사전적 의미와 관계없이, 나는 집에서 직접 차린 1개 이상의 반찬과 먹는다면 집밥으로 간주한다. 햇반에 조미김만 놓고 먹더라도 그건 집밥이다. 내가 직접 차렸기 때문이다. 햇반은 미리 취사가 되어 있는 즉석식품이지만, 손쉽게라도 밥을 차려 먹겠다는 의지는 정성에서 발현한다. 시판 양념은 요리 시간을 획기적으로 절약해 주지만, 재료를 손질하고 조리하는 모든 과정이 노력의 연속이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매일 한 끼의 따뜻한 집밥을 먹기 위해 각자가 가진 정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쉽게 이루어지는 일을 두고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시간이 제법 들고 손이 많이 가야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거라고. 나는 그런 가치 판단 속에서도 사람들이 하나같이 원하는 게 무언지 알 것 같다. 그건 '정성'이다.
쉽든 어렵든 모든 행위에는 정성이 깃든다는 사실.
이 하나만 기억하고 있어도, 우리는 밥상 앞에서 한층 더 행복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