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볼
금요일 밤이면 우리는 편한 파자마로 갈아입고 집 안을 환히 비추는 LED 전등 대신 낮은 조도의 스탠드를 켠다. TV 앞에 스툴과 의자를 가져다 놓고 커튼을 치면 아주 작은 홈시네마로 변신하는데, 이 공간의 포인트는 '자유로움'이다. 여기서는 신나게 떠들거나 박장대소를 할 수 있다.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몇 번이든 다녀올 수 있고 음식이 떨어지면 언제든 보충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방금 막 구워낸 뜨끈뜨끈한 군만두 같은 것도 냄새나 소리에 신경 쓰지 않고 호호 불어가며 맛볼 수 있다. 여기는 2인 전용의 우리 세상이니까.
1. 기름을 두르고 냉동만두를 먹을 개수만큼 올린 뒤 가스불을 켠다.
2. 지글지글 만두가 익는 소리가 들리면 밑면이 노릇하게 잘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 1/3 정도를 프라이팬에 부어준 뒤 재빨리 뚜껑을 닫는다.
3. 바글바글 끓으며 물이 졸아들 때까지 두면 밑면은 바삭하고 윗면은 촉촉한 군만두 완성!
4. 양조간장에 식초와 고춧가루 조금 넣은 간장양념을 곁들여 먹는다.
식탁 위를 세팅하고 군만두를 조리하는 동안 한쪽에서는 술을 만든다. 준비물은 위스키와 토닉워터, 레몬즙과 얼음. 얼음을 담은 술잔에 위스키와 토닉워터를 원하는 비율로 붓고, 레몬즙을 넣어 잘 저어준다. 혹은 레몬 조각을 짓이겨 가며 섞어 줘도 좋다.
직장일이 고단했던 두 사람은 따뜻한 음식에 시원한 술 한 잔을 준비해 놓고 벅찬 마음으로 의자에 착석한다. 술친구는 음악이 될 때도, 영화나 드라마가 될 때도 있다. 무엇이든 시작하기 전에 잘 차려진 주안상 앞에서 다정한 건배사는 필수다.
음악을 들을 때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선곡하고, 영화를 보는 날에는 서로가 좋아하는 장르, 적절한 러닝타임을 고려해 금요일 밤을 장식할 영화를 선정한다. 대부분 내가 원하는 음악을 듣고 내가 원하는 영화를 보게 되기는 하지만, 서로가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대화로 조율해 가는 시간은 부부에게 중요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하나의 식탁이 차려지는 과정이 매번 순탄한 것은 아니다. 특히 술상을 차릴 때가 그렇다. 누구는 금요일이니 좀 더 느긋하고 싶고, 누구는 금요일이기 때문에 시간을 아껴서 더 빨리 움직이고 싶다. 누구는 먹다 남은 술을 비우고 싶고, 누구는 새로운 술을 맛보고 싶다. 누구는 호러가 내키지 않고, 누구는 첩보액션이 흥미롭지 않다. 이러한 의견 차이로 마음이 상해서 말없이 안주만 깨작이다 밤 12시를 넘긴 어느 날. 그러잖아도 순식간에 지나가는 금요일 밤이 얄팍한 고집으로 인해 영영 지나가 버렸다는 것이 나는 정말 아쉬웠다.
술요일에는 술보다 중요한 게 있는데, 그건 서로를 향한 존중과 위로다. 편안한 공간에서 서로를 극진히 대접해 주는 시간. 한 주간 수고했다고, 열심히 일하느라 고생 많았다고. 너와 나를 격려하고 다독이며 다음 주를 그리고 또 다음 주를 견디게 하는 힘을 불어넣을 때, 술요일의 술은 마주 잡은 손 안에서 가장 달게 익는다.
오늘은 느긋하게 기다리고 먹다 남은 술은 흔쾌히 반기는 사람이 되어 보기로 한다. 어른의 얼굴에 숨겨진 어린 표정을 자세하게 들여다 보고, 언젠가 들었던 적 있는 작은 이야기까지도 귀담아듣다 보면 알게 된다. 많은 일을 하기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선택한 시간들이 때로는 더 귀중하고 달콤하다는 사실을.
술요일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