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알바천국, 알바몬, 벼룩시장 등 각종 구인구직 사이트를 검색해봤다. 저학년인 아이의 하교 후 픽업 문제로 대 여섯 시간 일할 수 있는 데로 한정 짓다 보니 일할 곳이 없었다. 주말 알바를 검색해봤다. 토, 일 오후 6:30~11:00, 마감 알바를 구하는 빵집이 있었다. 연령은 20~40까지.
나는 마흔이 넘은 나이로 조건이 맞지 않아 온라인상으로 이력서를 접수하면 연락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력서를 써서 직접 방문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급히 화장을 하고 내가 가진 옷 중 가장 단정한 것을 골라 입고 버스를 탔다.
번화한 사거리, 목이 가장 좋아 보이는 자리에 빵집이 있었다. 나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긴장되는 마음을 추스르고 자동문을 열고 들어갔다. 카운터를 보던 예쁘장한 알바생이 인사를 했다. 내가 이력서를 넣으러 왔다고 하자 알바생이 연락은 하고 오셨냐고 뚱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방문접수를 하러 왔다고 했다.
알바생이 사장님을 불러왔다. 30대 중, 후반쯤으로 보이는 사장님이 나를 보자마자 대뜸 몇 살이냐고 물었다. 내가 마흔셋이라고 하자 사장님은 "우리 나이 많은 사람은 안 뽑아요!"
그 말이 끝이었다.
나는 그 30초간의 시간이 당혹스러웠지만 손에 들고 있던 이력서를 내밀고 "그래도 이력서는 두고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하고 나왔다.
정말 30초였다. 아니 20초였나?
내가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버스를 타고 도착하는 데까지 걸린 1시간, 그 한 시간 동안의 긴장되고 상기되었던 마음이 롤러코스터처럼 뚝 떨어졌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데, 좀 전 이력서를 두고 온 빵집에서 연락이 왔다. 이력서를 보니 왠지 믿음이 가고, 나이는 많지만 그만큼 손님에게 더 친절하게 응대하실 것 같으니 다음 주부터 출근해도 좋다는 연락이었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런데 기쁜 마음도 잠시, 최저시급은 9,160원이지만 거기서 10퍼센트를 감해서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일을 하면 시급으로 8,244원을 받고 토, 일 일을 하면 74,196원, 그럼 나는 매달 290,784원을 월급으로 받는 것이다. 거기다 세금을 떼고, 왕복 버스비를 제하면......
내가 머뭇거리자 사장님은 이 쪽 계통은 모두 최저시급에서 10퍼센트를 감하는 게 관행이라고 했다. 그쪽 업계에서는 당연한 일인 것이다. 나는 전화를 하는 몇 초 동안에 일을 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했다. 마음이 조급했다. 그럼에도 뭔가 억울한 마음이 스쳤다. 벌써부터 이런 마음이 든다면 아무리 알바라도 오래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미안합니다. 그런 조건은 조금 걸리네요"
전화를 끊고 가슴이 방망이로 두드리는 것처럼 두근거렸다. 그냥 다시 전화해서 한다고 할까. 그 돈이면 한 달 용돈은 할 수 있는데...... 혹시라도 다시 전화가 온다면 못 이기는 척 출근한다고 할까.
이렇게 알바 에피소드는 끝이 났다.
최저시급을 주지 않아도 일을 하겠다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래서 국가에서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최저임금법은 암암리에 아니 대놓고 지켜지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최저임금법은 노동자가 그러니까 803호 대학생이 1004호 아가씨와 총각이 그리고 내가 적극적으로 요구해야지만 실효성을 발하는 법인 것 같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에게 더 가까운 것이며, 근로자에게는 당위적으로 보장받는 것이 아닌 '선택'의 문제일 뿐.
803호 대학생과 1004호의 아가씨와 총각이 알바 조건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굳이 노동청을 찾아 진정서를 넣지 않는다. 권리를 쟁취하려는 '노동쟁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사이의 좀 더 체계화된 집단에서 이루어진다. 알바는 그냥 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때문에 근로기준법에서 더더욱 보호해야 할 가난하고 아쉬운 사람이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 공백으로 내몰린다. 그 공백이 관행처럼 이어진다.
구인광고에는 최저시급이 보장된 월급을 제시한다. 하지만 조건이 '수습기간' 있음, 그건 최저시급보다 더 적게 돈을 주겠다는 의미이다. 그나마 '수습기간'을 기재한 건 양반이다. 온라인상에 게재한 월급과 실제 면접을 보러 가서 제시하는 월급은 확연히 다르다. '수습'이라는 명목으로 역시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액수를 제시한다.
결국 거창히 말하면 '노동쟁의'계의 잔다르크가 되지 않으면 내가 보장받을 수 있는 최저시급은 없을 수도. 사실 그 사용자들도 무수한 공백, 빵꾸를 채우면서 일을 하다가 지금의 소자본가의 위치까지 온 것이라고, 노동쟁의를 하고 싶지 않은 나는 먼 산만 바라본다. 우리 집 거실에서 보이는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