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이날 Aug 29. 2022

아빠의 태권도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아빠

 늦은 밤, 불을 끄고 누워 아빠를 생각한다.

 검은 교복을 입고 검은 책가방을 들고 한쪽 어깨에는 줄로 묶은 스티로폼 상자를 둘러맨 아빠가 철길을 따라 걸어오고 있다. 미래에서 온 나는 아빠 뒤를 가만히 따라간다. 

 아침은 먹었는지, 어깨에 맨 상자가 너무 무겁지는 않은지, 비가 오는 철길은 위험하지 않은지, 나는 어린 아빠의 모습을 엄마의 마음으로 생각한다.


 17살이 된 아빠는 학교를 가는 중이다. 철길을 따라 한 시간 반을 걸으면 학교에 도착한다. 

 1967년, 우리가 쭈쭈바라고 부르던 아이스크림의 전 단계가 출시된다. 그건 튜브형 비닐이라기보다 고무막에 싸여진 형태에 가깝다. 아빠는 그 풍선같은 아이스크림을 들고 등굣길에 오른다. 아빠는 학교를 오가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팔아서 돈을 마련하고자 한다.


 한 시간 반이나 되는 거리를 걸어가는 것.

 아이스크림 상자를 매고 길거리 장사를 하는 것.


 그 두 가지는 아빠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6.25가 터졌을 때도 소식이 감감 멀어 나라의 우환도 실감하지 못했다던 깡시골. 그곳에서 자란 아빠는 산 고개를 여러 넘어 중학교를 다닌다. 세 고개를 넘는 동안 아빠의 어깨에는 책을 동여 맨 보자기와 놋그릇을 짊어진 지게가 함께 한다. 학교는 비교적 읍내에 위치했으므로 하굣길에 장에 들러 놋그릇을 부셔놓으려고 한다. 아빠는 놋그릇을 팔아서 고등학교에 진학할 학비를 마련하고자 한다. 


 아빠는 말솜씨 좋은 장사꾼을 흉내 내지 못한다.

 "그릇 사세요~ 그릇" 

 그 한 두 문장이 아빠의 입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아빠는 수줍음이 많아서 "그릇있어요"란 말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자꾸만 양볼이 붉어진다. 아빠는 꿀 먹은 벙어리 마냥,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가만 앉아있다가 해가 떨어지기도 전에 풀어놓은 보따리를 싼다. 집에 가려면 또 산을 세 고개나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배는 고프고 갈 길은 먼데 그릇은 팔리지 않는다. 

아빠의 프리마켓은 이문은 남기지 못하고 놋그릇만 덜렁 남긴다.


 17살이 된 아빠는 홀로 도시로 상경한다. 깡시골에는 고등학교가 없기 때문이다. 아빠는 부산으로 온다.

고등학생이 됐다고 수줍음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도시는 시골과 달리 세련되고 예쁜 여학생, 키가 훤칠한 남학생, 한복보다 양장을 입은 사람들이 더 많다. 깡시골에 비하면 사람도 건물도 차도 뭐든지 많다. 원래 양볼이 자주 붉어졌던 아빠는 더 조용하고 더 수줍음이 많아진다.


 그러니까 아이스크림 장사가 잘 됐을 리는 없다. 

 이번에는 "아이스크림 사세요~ 아이스크림", 이 두 문장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부끄러움이 앞선다. 

 아빠의 아이스크림 장사는 입 한 번 못 떼고 막을 내린다.


 차선책으로 아빠는 걸어가기로 한다. 차비를 아끼기로 한다. 덜 먹고 많이 걷기로 한다. 

 놋그릇 장사가 망했든 아이스크림 장사가 망했든 아빠에게는 목표가 있다. 


 태권도.


 17살, 도시의 공고에 진학한 아빠는 태권도장이 가고 싶다. 

 놋그릇을 졌기 때문일까, 늘 허기져 빈혈을 달고 살았기 때문일까. 아빠는 형제 중 키가 가장 작다. 키가 몇이냐고 물으면 아빠는 소수점 자리를 반올림해서 164라고 말하고 다녔을테다. 어쩜 163과 영점 몇의 소수점도 발등을 들어 근근이 얻어낸 것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아무튼 아빠는 작고 왜소하다. 


 그럼 몸무게는 어떤가. 앞자리에 6을 달아도 화장실 한 번 다녀오면 5로 주저앉았을테다. 놋그릇을 지고 산고개를 넘거나 철길을 따라 왕복 세 시간을 오가다 보면 앞자리 6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사치인 지 알게 될 것이다.


 아빠의 태권도에 대한 열망은 작고 왜소한 데서 시작됐다고 나는 짐작한다.

 

 아빠는 17살이 가질 법한 꿈을 이룬다. 두 달 가까이 걸어서 모은 차비로 태권도장에 등록을 한 것이다.


 아빠는 학교를 마치고 한 걸음에 태권도장으로 간다. 

 나는 앞구르기, 뒷구르기를 하고 앞발차기, 뒷발차기를 하고, 멋지게 한 바퀴 돌려차기를 하는 어린 아빠를 상상한다. 그 후로도 철길을 따라 몇 달을 걷고 또 걸어서 태권도장을 1년이나 다닐 수 있었던, 그래서 이제 격파도 하는 태권청년 어린 아빠를 열렬히 응원한다. 자유로이 두 발을 하늘 높이 차고 오르는 어린 아빠를 눈물겹게 응원한다.


 밤에 불을 끄고 누우면 철길을 따라 걸어가는 아빠의 뒷모습이 흑백으로 흘러간다. 나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과거로 돌아가 어린 아빠의 뒤를 따라간다. 아빠가 심심하지 않게 노래도 불러준다. 그리고 묻는다.

'아빠, 다리 아프지 않아? 아침은 먹었어? 아빠, 춥지 않아? 아빠, 많이 힘들지.....'

아빠......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어린 아빠는 어른이 되고 아빠가 되면서 더 이상 힘찬 발차기를 하지 못한다. 서른이 된 해, 평생 절뚝거리는 다리를 갖게 된 때문이다.


그런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 왜 그렇게 태권도가 하고 싶었던 거야?"


아빠는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모르겠다니, 철길을 그렇게 걸었는데 모르겠다니, 나는 알면서도 모르겠다고 대답한 아빠만의 사연이 있을 거라고 짐작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최저임금은 못 준다네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