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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은 Aug 27. 2024

최선의 엄마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엄마를 바랐던 것 같기도 해

    내가 정말 자기소개서도 쓰고 면접도 보러 다닌다는 걸 알게 된 엄마는 종종 전화가 온다. 그전에 때려치우겠다고 했던 말들은 흘려 들었던 게 분명하다. 처음에는 '정말 관두게?'라고 하던 것이 요즘은 응원을 해주는 편이다.


    "아는 사람이 그러는데 산업은행 같은 데도 좋다더라. 공부하면 금방 들어간다던데"

    - "엄마 그 말 한 사람 60살쯤 되지? 곧 정년이지?"

    "... 응 어떻게 알았어?"

    - "다른 데 가서는 그런 말 하지 마. 욕먹어. 엄마 딸 안 가는 게 아니고 못 가는 거야ㅋㅋㅋㅋㅋ"


    그녀의 응원과 정보제공이라는 것이 이렇다. 공공기관에 30년이 넘게 근속 중인 엄마는 요즈음의 취업시장이라는 걸 전혀 모른다. 엄마의 세상물정 모르는 말을 웃어넘길 수 있게 되다니, 내가 참 많이 컸다 싶다.


    엄마는 내가 고3일 때도 입시를 참 몰랐다. 딸이 전교 일등이었음에도 그랬다. 수능 2주 전쯤이었나, 엄마가 책상에 뽑아다 놓은 말도 안 되는 단계의 학습 프린트물을 보고 '어쩜 이렇게 모를 수가 있나' 하는 마음에 너무 열이 받아서 거실 바닥에 집어던졌다. 프린트들을 묶어 둔 클립도 함께 날아가서 종이가 온 집안을 뒤덮었다. 그 꼴을 뒤로하고 등교했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화해의 의미로 데리러 온 엄마의 차를 모른 척 지나쳐서 혼자 집에 걸어왔다. 그 후로 이틀 정도 말을 안 했다. 


    그때의 나는 엄마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엄마를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그간의 무관심을 상쇄하는, 나보다도 나의 일에 대해 더 잘 아는 엄마를. 그걸 정말 원하지도 않았으면서 그냥 엄마를 구박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간 무심해놓고 지금 와서 왜 이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일 등을 해도, 전국 모의고사에서 상을 받아도 엄마는 그게 어떤 건 지 잘 모르지. 그러면서 언니의 학교생활, 언니의 학원에 대해서는 잘 알잖아. 이런 마음. 지금이라도 관심을 가지는 것에 고마워할 수 도 있었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어리고 예민한 시기였던 같다. 지금은 그때의 엄마가 최선의 엄마였다는 걸 조금은 알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여러모로 많은 깨달음이 있는 늦은 취업준비다. 깨달음은 좋지만.. (좋은가..?) 얼른 끝나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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