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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은 Jan 12. 2024

우리 엄마는 진짜로 좋은 사람이에요

'좋은 나'를 지키기 위해서 이보다 더할 수 없이 애쓰는 아이인데

'좋은 부모'를 지키기 위해서는 '좋은 나'도 내다 버린다.

대체 부모는 뭘까

부모는 아이의 세상이다.

요즘처럼 이 말이 무섭게 와닿은 적은 없었다.


상담을 받을 때, 혜은 씨의 엄마는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우리 엄마는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상담사님은 그렇게 '우리 엄마 좋은 사람이에요.' 하고 딱 말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정말 없는 거 아세요? 하고 물었다. 그런가요. 그런데 우리 엄마는 진짜로 좋은 사람이에요. 


.......

내가 안타까워하는 학생과 나 자신이 뭐가 그렇게 다른가?




라고 썼던 어느 날의 메모. 

그런데 우리 엄마는, 진짜로 진짜로 좋은 사람이라서,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 된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본가에 갔다. 이 도시로 이사 와서 이 성당을 다닌 지 20년이 되었으니 최소한 20년이 넘은 건물일 것이다. 성당이 20년 전에 봤던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게, 매일 성당을 쓸고 닦고 유지해 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운 감동을 주었다. 언니는 신이 나서 나를 성당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얘가 제 동생이에요. 서울에서 내려왔어요. 이 성당에서만큼은 언니가 나보다 익숙하고 능숙한 사람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성당은 올 때마다 눈물을 참아야 하는 곳이 됐다.


    다음 날, 늦잠을 자고 일어나 거실에서 엄마랑 대화를 나눴다. 


    성당 사람들이 이젠 너를 언니인 줄 알더라. 언니가 화장도 안 하고 그래서 그런가, 앳되어 보이는 게 있나 봐.

  - 그런가. 

    혜은이 너도 자그마할 때가 있었는데. 그거 기억나? 성당에서 성경캠프 갔던 거. 

  - 언제? 

    너랑 언니랑 어릴 때. 둘이 보내놨더니 언니가 오줌을 싸서 네가 고생했지. 물론 다른 선생님들이 도와주셨지만, 그 자그마한 게 '언니 그러면 안돼!' 했다는 게. 너도 어렸는데. 언니 억지로 여기저기 붙여 보내느라 혜은이가 고생 많이 했지.

  - 그래? 난 기억 하나도 안 나.

    그럼 다행이다.


    어릴 적 학교나 청소년 단체 행사에 언니를 데리고 다니느라 곤란했던 상황들은 기억보다는 감정으로 남아있다. 자세한 상황은 전혀 떠오르지 않지만 나도 너무 낯설고 어려운 자리에서 나보다 미숙한 존재를 챙겨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서러웠던 느낌만 마음속에 덩어리 져 있었다. 엄마의 말을 듣자 그 덩어리가 녹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뭔가 탁, 하고, 따뜻한 전구가 켜져서 눈덩이를 비추기 시작한 느낌.


    나는 엄마를 버리지 못하고 엄마는 언니를 버리지 못하니 나도 언니를 버리지 못할 것이다. 엄마는 너무 좋은 사람이고 동시에 나에게 언니를 남기는 사람이다. 어린 나에게 언니를 딸려 보냈던 사람이지만 당시의 삶에서 최선을 다 한 사람이고 15년이 넘게 지난 후에 '그때 네가 고생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다.


    다음에 본가에 갈 때에는, 그럴만한 용기가 난다면, 지금이라도 알아줘서 고맙다고, 엄마가 그걸 고생이라고 말해준 게 지금의 나에게 커다란 의미라고 엄마에게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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