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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을 지나며

by 은혜은

2024년을 돌아보다 2월에 호주 여행을 다녀왔다는 걸 확인하고 화들짝 놀랐다. 전생도 넘어 전전생처럼 느껴지는데 그게 올해였다니. 왜 좋았던 시간은 빠르게 멀어져서는 아주 먼 과거처럼 느껴질까.

난히 긴 한 해였다. 3월 전근, 9월 퇴사 및 입사, 12월 퇴사 및 입사. 일 년 간 세 곳의 직장을 거쳤다. 들어가기도 힘들었고 나오기도 힘들었다. 퇴근 후 이직을 준비하느라 피곤했고 계속해서 환경이 바뀌는 탓에 적응하기 바빴다. 임용을 준비하던 해에 버금가게 길었던 것 같기도 한.. 가? 아니다. 그래도 임용 때가 더 길었다.


아직 모든 고통의 시간을 임용 준비 시절에 빗대고, 마음 아픈 뉴스를 보면 학교 현장이 떠오르는 나인데 이제 더는 상담교사가 아니라는 게 가끔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왜 그만두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 가족도 친구도 이직처의 면접관도 다들 궁금해했다.

나는 아픔에서 멀리 있고 싶었다. 가까이에서 보는 아픔이 너무 아팠고, 그 아픔이 자꾸 내 아픔까지 떠오르게 하는 게 싫었다. 아픔의 존재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의 아픔을 민감하게 감각하는 사람들을 동경했다. 그리고 그들조차 내 아픔은 몰라주는 것 같아 슬퍼하기도 했다. 최소한 직장에서라도 아픔을 모르고 지내고 싶었다. 마음을 쓰지 않는 일을 하고 싶었다. 직장에서까지 울지 않아도 세상에는 이미 마음이 쓰이는 일이 너무 많다.

아픈 기억이 없는 장소와 날짜가 있을까. 어느 곳에나 어떤 날에나 아픔이 있다. 규명할 수 있는 원인은 아주 일부뿐이고 우연히 아픈 일이 생기기도 한다. 누군가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는 것만이 곧 맞닥뜨릴 나의 아픔에 대비하는 방법일 것이다. 아픔 속에 남은 모두가 괜찮을 수 없는 시간을 잘 견뎌내 주기를, 언젠가 괜찮아져 가는 것에 죄책감은 느끼지 않기를 감히 빌어본다.

여러 이유로 가라앉는 연말연초다. 좋았던 시간은 빠르게 멀어지고 힘든 시간은 영원할 듯 하지만 지금이 계속되는 어둠이 아니라 끝이 있는 터널이길 바란다. 다들 너무 오래 침전하지 않고 올 한 해를 차분히 정리하며 다음 한 해에 희망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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