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뚜벅이 여행 언제쯤 끝나나요? 원래 일어나려던 것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다. 브런치를 먹으러 갔더니 사장님이 한국인이면 아이스 롱블랙이냐 아이스 라떼냐고 묻는다. 한국인의 유별난 아이스 아메리카노 사랑 이미 소문이 다 났구나. 아보카도와 수란이 올라간 토스트랑 따뜻한 라떼 한 잔을 주문했다. 사실 아이스 라떼와 따뜻한 라떼 사이에서 굉장히 고민했었는데 거기서 아이스를 주문하면 뭔가 지는 것 같았다. 메뉴가 나왔을 때는 이거 먹고 배가 부를까 싶었는데 보기보다 배부르게 먹고 본다이 비치로 가는 버스를 탔다. 망설임이라고는 모르는 기사님이 터프하게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30분쯤 달리니 바닷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스버그 수영장은 정말 예뻤다. 동행이 있었다면 예쁜 사진이 나오지 않았을까.. 인생 최대 노출의 차림이라 사진을 찍었어도 어디 올리진 못하겠지만 괜히 아쉬울 정도로 아름다운 배경이었다. 10분쯤 물놀이를 하다 보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는 마인드로 계속 수영하고 있었는데 빗발이 점점 거세지더니 수영장 운영이 중단됐다. 코스탈워크를 걸어서 브론테 배쓰까지 가는 게 오늘의 계획이었는데 비가 계속 올 것 같아 일단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한국에서 호주까지 챙겨 온 우산을 숙소에 놔두고 나오는 바람에 비를 쫄딱 맞고 숙소로 돌아왔다.
실내 쇼핑몰 구경으로 계획을 변경한 후, 씻고 길을 나섰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의지력을 소모했다. 수영하고 비 맞고 씻은 후의 침대가 너무너무 달콤해 보였는데.. 지금 누우면 오늘 하루가 끝날 게 뻔해서.... 의지를 그러모아 침대를 뒤로하고 나왔다. 퀸빅토리아 빌딩을 돌아보고 근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이 도시는 뭔 놈의 카페들이 죄다 5시에 닫아서 체인점을 갈 수밖에 없었다. 와중에 이 악물고 스타벅스는 피하고 싶어서 영업 중인 카페를 한참이나 찾아 헤맸다. 커피를 마시고 와인 한 병을 샀다. 다른 장도 잔뜩 봐서 숙소로 향하는 와중에 마법처럼 날이 갰다. 비가 온 후 갠 하늘에 노을이 너무 멋질 것 같았다. 숙소에서 천천히 저녁을 해 먹으려던 계획을 수정하고 짐만 놔둔 채 허겁지겁 천문대 공원으로 향했다. 모기기피제를 챙기는 걸 깜빡해서 한국에서 호주까지 모셔오고도 못 써먹은 아이템이 하나 늘었다. 급하게 언덕을 올라가느라 너무 힘들었고 모기도 잔뜩 물렸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뷰였다.
뿌듯한 마음과 간지러운 다리로 숙소에 돌아왔다. 공용 주방에서 장 봤던 고기도 구워 먹고, 용감하게 다시 간 (그러나 너무도 불안했던) 바선생 소굴에서 여전히 멋진 오페라하우스 뷰를 바라보며 와인도 한 잔 마셨다. 25유로 언더로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27유로짜리를 강력 추천받아 구매한 와인이다. 상술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정말 맛있어서 괜찮았다. 약간 '돈 버는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3유로짜리 와인을 마시던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다. 오늘은 뭔가 계획대로 잘 된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아쉽지도 않은 하루였다. 평소의 나라면 코스탈 워크를 못 가게 된, 처음으로 계획이 틀어진 시점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을 텐데. 카페를 찾느라 시간을 버려서 노을 보러 가기가 빠듯했던 것도 계속 곱씹으며 속상해했을 텐데 말이다. 이게 여행의 마법인가 싶다. 일상에서도 여행하듯 살아보자 좀. 내일은 드디어 코알라 보러 가는 날! 일찍 잘 일어날 수 있길..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