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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알라가 세상에서 제일 귀여워

by 은혜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기상악화로 인한 블루마운틴 투어 취소 연락을 받았다. 되는 일이 없군 싶었지만 너무 속상해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하며 페더데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커피가 너무 당겨서 한 잔 마셨는데 그 몇 분 때문에 환승시간이 밀려서 예상했던 시간보다 30분은 더 늦게 동물원에 도착했다. 바로 어제 일기에 여행 와서는 계획이 틀어져도 그렇게 짜증 나거나 속상하지 않다고 적었었는데 짜증이 솟구쳤다. 한 입으로 두 말하기가 이렇게 쉽다. 다행히도 짜증은 코알라를 보자마자 사라졌다. 정말 너무너무 귀여워…. 사랑스러운 코알라들이 호주 대륙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제일 합성 같은 기념사진도 남기고, 비 오는 와중에 싸 간 도시락도 야무지게 먹고 장장 3시간을 페더데일에서 행복하게 보냈다. 비 오는 흙바닥에서 고생한 샌들이 돌아오는 기차에서 장렬하게 전사해서, 맨발로 시드니 지하철을 걷다가 마트에서 슬리퍼를 하나 사 신었다.



내일의 날씨도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일정을 어떻게 짜지 고민고민 하다가 오후에 날이 갰길래 오늘 보타닉파크와 맥쿼리 포인트에 가서 선셋을 보고 오기로 결정했다. 가는 길이 공원을 통하는 길이라 예쁠 것 같고, 대중교통을 타고도 꽤 걸어야 하길래 40분 동안 그냥 천천히 걸어가기로 마음먹고 슬리퍼 대신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그리고 10분쯤 걸었을까,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대중교통을 타기에는 애매해진 위치와 걸어도 걸어도 아름다운 풍경의 힘 때문에 계속 걸었다. 정말 이러다 디스크가 나가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십 대 후반의 여행은 뭔가 더 멋진 교통수단을 이용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조금 더 낡은 몸뚱이로 계속된다. 허리의 통증보다 피할 수 없는 노화에 대한 마음의 쓰라림이 더 큰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오늘 본 풍경은 참 예뻤다. 이번 여행은 사진보다 영상을 좀 더 남기고 있는데, 꼭 뭐라도 하나 만들어서 두고두고 봐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3일 내내 날씨가 구리다가 저녁만 반짝 맑은 시드니가 얄밉기도 하지만 먼지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물들이는 선셋 값이라 생각하면 또 밉지가 않다. 그리고 오늘 투어가 취소되지 않았더라면 진짜 디스크가 나가거나 발에 물집이 단단히 잡히거나 했을 것 같다. 내일 날씨가 맑으면 코스탈 워크를 걷고 싶어질 텐데 그러면 정말 죽어날지도…. 어쩌면 흐리고 비 오는 날씨가 내 허리와 발을 위한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좋게 좋게 생각하자. 내일은 벌써 시드니 마지막날이다. 너무 피곤하다. 얼른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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