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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은 Nov 13. 2022

매일이 생일이고 기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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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은 마음을 기다려주는 법이 없어서 또 하루가 지난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일상적인 출근길. 이제는 뉴스가 아니라 카톡으로 전해지는 비보들... 이것들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이상하게만 느껴진다. 너무 가깝게 느껴지고, 실제로도 가까웠던 참사. 그리고 쉼 없이 흘러가는 일상. 그 사이에서 틈틈이 눈물이 차오르지만 흘리지는 않고, 불편한 마음으로도 직장 동료와 점심식사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하필 오늘은 취소할 수도 없는 학교 행사 날이어서 더욱 심란한 마음이었다. 웃으면서 학생들을 맞아야 하는데. 학생들의 들뜬 마음에 맞장구를 쳐주고 싶은데. 쉽지 않은 하루였다. 


    며칠쯤 지나야 하루의 끝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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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과 먼 도시에 있을 때는 그 시끌벅적함에 취해 잠깐 괜찮았던 건지, 돌아와 혼자 있으니 다시 기분이 착 가라앉는다.


    그곳에 갔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집순이 친구가 그 시간 거기에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더 그렇다. 정말 잠시 구경하러 들렀는데 휘말렸다고.. 남자 친구와 함께 있었고, 경사로 위쪽이었고, 주변 가게 사장님이 끌어올려줘서 살았다고. 만약 하나라도 달랐다면 자기도 무사하지 못했을 거라고 하는 말을 듣고 있는데 너무 감사하고 무서워서 손이 떨렸다. 운이 좋았다는 말이 이렇게 무겁게 다가온 적은 처음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였기에 운전해서 무사히 집으로 올 수 있었지만 차를 향해 가는 길거리 풍경이 너무 기괴하고 참혹해서 악몽을 꾼다고 한다. 해당 현장에 있었고, 다행히 다친 곳은 없지만 CPR을 하고서는 죄책감과 충격을 호소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 도시가, 우리가 언제쯤 이 충격을 가라앉힐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흔들리는 마음으로 뭘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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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오르는 대로 적어두었던 조각 글들을 모아 적었다. 또 사람이 죽었다. 그 뉴스를 본 날에도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모임이 있었다. 매일이 누군가의 생일이고 누군가의 기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두의 하루하루가 각자 다른 의미를 지니고 같은 시공간에서 굴러가고 있음을 감각하려다 보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냥 내 하루를 잘 살아가야지, 내 생활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친절해야지. 하면서도 과연 그게 전부일까? 싶기도 하다. 매일이 생일이고 기일인데, 이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건 너무나도 잘 알겠는데,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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