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섬은 오랜 로망이었다. ‘남이섬’이라는 이름에는 ‘관광지로 개발된 한강 상류의 하중도’라는 단순사실 이상의 어떤, 그래. 두근거림이 서려있었다. 실제로도 남이섬은 연인들과 가족들의 그러한 두근거림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두근거림과 나의 심장박동은 별개였다.
분명 아름다운 섬이었다. 잔디는 푸르렀고 키 큰 나무와 키 작은 나무가 조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자연을 제외한 그 섬에 있는 모든 것들이 조잡하게 느껴졌다. 대체 왜 이게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어떤 관광지를 만들고 싶었던 건지, 이 섬의 정체성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남이섬’이라는 막연한 로망에 무엇을 기대했고, 왜 실망하는지조차 명확하게 인식할 수 없었지만 로망의 장소를 한 곳 잃은 것에서 오는 헛헛함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 혼자라는 사실이 헛헛함을 증폭시켰다. 혼자 가고 싶어서 혼자 갔으면서 그 때문에 헛헛하다하면 어쩌라는 건가, 싶지만 언제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된 적이 있었나. 그냥 ‘내 마음이 그랬다’하고 넘어갈 수밖에. 굳이 변명을 붙여보자면, 나는 공간의 변화는 시간의 변화보다, 사람의 변화보다 느리고, 그래서 공간에 남긴 기억은 오래 존속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로망의 공간에 누군가의 기억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변하지 않은 공간에서 변해버린 사람의 기억을 붙들고 아프고 싶지 않았다. 해 본적도 없는 헤어짐이 무서웠다. 나 자신의 찌질함에 놀라면서도 나의 방식이 안전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용감하게 서로의 기억을 공간에 남기고 있었다. 설령 한 순간일지라도, 언젠가 끝나야만 할지라도, 그 공간에서 서로의 지금을 담고 있었다. 그 용감한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로부터 그리고 기억으로부터 도망치려했던 나의 비겁함이 부끄러워졌다. 이제는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는, 공간에 누군가의 기억을 새겨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군가가 당신이라면 좋겠다. 변치 않을 공간에 나의 스물한 살과 함께 오래오래 기억될 사람이 당신이길 바란다. 스물두 살도, 스물세 살도 함께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작가신청을 받는 브런치 팀께 '저는 이런 걸 씁니다'하고 참고할만한 글을 조금 더 저장해보고자 오랜만에 외장하드를 뒤져보았더니 나온 것. 제법 재미있다. 이래서 기록을 하나봐. 나중에 보고 웃으려고.
공간에 기억을 남기지 않겠다는 두려움을 비겁하다고 썼었지만, 그건 두려워할 만한 일이였어. 넌 나중에 자취방 책상 때문에, 싱크대 때문에, 동네의 골목골목과 벤치 때문에 울게 된다. 한참 울고서는 친구와 '다음 애인은 절대 본인 사는 동네에 들이지 말자, 내가 그쪽 동네로 가서 시간을 보내자'하는 다짐을 한다. 그런가 하면 다른 어떤 친구는 지금까지 만난 모든 애인과 남이섬에 갔대. 가서 똑같은 공작새를 보고 똑같은 사진을 찍어도 똑같이 좋대. 사람이 참 다양하다. 웃기지.
위에서 말하는 '당신'과는 스물한 살의 짧은 한 때만을 함께할 수 있었어. (이게 성공한 짝사랑인지 실패한 짝사랑인지는 잘 모르겠다) 비련의 주인공이 된 마냥 다시는 사랑 못할거라던 시기를 지내고 스물두 살, 스물세 살에는 다른 사람과 함께한다. 지금은 둘 다 예전의 한 사람이 됐어. 이것도 웃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