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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은 Mar 23. 2023

낳기 전에는 모르는 행복

한번 해볼까 마음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혜은쌤은 결혼 생각 없어? 자녀 계획은?"

    흔한 점심식사 중의 스몰토크. 곧 결혼하시는 선생님이 계셔서 주제가 이렇다.




    음... 저는 못 낳겠어요.


    낳아놓고도 함부로 대하고 제대로 안 키우는 부모들, 열심히 길러도 멋대로 엇나가는 아이들을 주로 봐서 그런가... 좋은 부모가 될 자신이 없어요. 저는 저희 엄마아빠가 정말 좋은 부모님이라고, 나라면 결코 우리 부모님처럼 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엄마아빠에게 아프도록 서운했던 기억이 드문드문 남아있는데. 제가 아이를 낳으면 걔를 저보다 더 아프게 하지 않을까요.


    낳기 전에는 모르는 행복이라고들 하잖아요. 물론 아이들과 함께 다니는 부모님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고, 아이의 존재는 멋진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모르는 행복은 모르는 채로 두고 싶어. 아는 행복만 좇으며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저는 뭘 감수해야 하는 게 싫어요. 모르는 행복이 아무리 크다한들 그건 '모르는' 행복이잖아요. 지금의 아는 행복을 걸고서 모르는 행복을 향해 나를 던지고 싶지 않아요.


    키우던 햄스터가, 고슴도치가 떠났을 때 너무 가슴이 아파서 앞으로 반려동물은 들이지 않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강아지나 고양이를 정말 좋아하고, 그들이 주는 기쁨이 정말 클 거라고 짐작하지만 는 시작하기도 전에 끝이 두려워요. 나보다 사랑하는 존재를 두고 싶지 않아요. 평생 걔 걱정만 하다가 죽을 것 같단 말이에요. 가 자녀에게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끼쳐서 그 아이 인생의 상당 부분을 결정짓게 될 거라고 지레 겁을 내는 것이  오만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겁이 나요.


    그리고 제가 돌봐야 하는 존재는 언니만으로 차고 넘쳐요. 


    "삶은 한 번에 시작되거나 끝나지 않는 것 같아. 한번 해볼까 마음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오은, 윤덕원(브로콜리너마저) '여름이 다 갔네' 가사 中


    단단히 마음을 먹고 태어난 게 아닌 삶에서 또 마음먹지 않은 아이를 낳아서 되돌릴 수도 없이 함께해야 한다는 게 저는 너무너무 무서워요. 그래서 아이를 안 낳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렇게 대답하는 건 '스몰'토크가 아니니까...

    - "하하 누가 있어야 결혼을 하든가 하죠 하하하"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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