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발달장애인 비장애형제 모임 '나는'
발달장애인 비장애형제 모임 '나는'에서 진행한 '장애형제의 주거 준비' 강연에 다녀왔다. 현재 제공되고 있는 장애인 주거복지서비스의 종류에 대해 사회복지사님께 개괄적으로 설명을 듣고, 중증 발달장애인 거주시설 원장님과 대화의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탈시설화 기조 속에서 발달장애인 집합 거주시설은 너무나 부족한데, 돌볼 가족이 없는, 혹은 가족이 그를 돌볼 여력이 없는 발달장애인들은 어디로 가는가. 노숙인 시설, 노인요양 시설 이용자 중 제법 많은 비율이 발달장애인이라고 한다. 발달장애인 거주시설의 명백한 필요를 탈시설화라는 명목 하에 흐리며 오히려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이 복잡해졌다.
또 하나 심란했던 것은 이번 강연에 참여한 비장애형제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장애형제와의 미래를 고민하는 것에는 장애형제의 성별이 꽤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무래도 동성인 장애형제를 돌보는 것보다 이성인 장애형제를 돌보는 것에 추가적인 어려움이 따를 테니까. 당장 나는 언니와 대중목욕탕에 가서 등을 박박 밀어줄 수 있지만 나의 남동생은 그럴 수 없으니까. 그런데 발달장애인이 여성만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장애형제의 성별과 관계없이 '돌봄'을 고민하는 것은 왜 여성일까? 왜 발달장애인의 남동생이 아니라 올케가 거주시설 입소를 문의하는 걸까. 혈육은 대체 뭘 하고. 너무나 열받는 지점이었다...^^
내 주변의 남성 비장애형제들을 떠올리고 다음 강연에는 그들을 데려와야 하나 생각을 잠시 하다가 접어두었다. 나도 언니와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고민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막연한 걱정과 불안은 언제나 있었지만, 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미리 대비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올해부터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내 졸업도, 내 취직도, 내 주거지도 불안할 때에는 (그게 나의 삶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내 장애형제의 삶일지라도) 다른 사람 삶에까지 관심 가질 여력이 없으니까. 취직 후 1년의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일상이 나름의 예측 가능한 큰 틀 속에서 굴러가는 2년 차가 되어서야 언니의 삶은, 언니와 함께하는 삶은 어떨지 고민을 시작해 볼 수 있게 된 거니까. 이제 막 대학생활에 접어드는 남동생에게 큰누나 인생도 한번 생각해 보라는 말을 할 수는 없지. 그런데 걔가 자리 잡는 시점이 와도 내가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사실 자신이 없다. 왠지 언니를 돌보는 일은 내가 해야만 할 것 같아. 다행인지 불행인지 동생이 가려는 진로는 가방끈이 제법 길어야 해서, 고 남자애가 자리 잡으려면 족히 10년은 걸릴 거다. 그 시간 동안 이 근본 없는 책임감이 어디서 왔는지를 살펴보며 해체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희망적인 부분도 있었다. 발달장애인 그룹홈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점이다. 물론 수용인원이 매우 적고 대기인원이 한 트럭이라고 하지만.... 언니는 낮 시간에 혼자 외출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시간을 자유롭게 보장하면서 저녁에 집에 들어왔는지 확인하고, 저녁을 먹이고, 깨끗하게 씻고 자라고 닦달해 주는 사람만 있으면 좋겠다고, 그러나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이 제발 나는 아니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룹홈은 그런 점에서 많은 부분을 만족하는 선택지였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가지고 알아봐야겠다.
절망과 희망이 모두 있었고 그보다 큰 위안이 있었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에 힘이 되었다. 강연 시간 내내 눈물을 참아야 했는데, 발달장애인의 어머니이시기도 한 거주시설 원장님의 말씀에는 결국 눈물이 났다.
"저는 발달장애인에게 형제자매가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의 존재가 주목받지 않으면 좋겠어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발달장애인을 돌볼 사회적 시스템입니다. 비장애형제가 시스템의 대안이 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도의적 책임을 느껴서 발달장애 형제와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는 거겠지만, 사실 어떤 법적 책임도 없어요. 장애형제를 책임져야 할 사람은 여러분의 부모님과 사회입니다. 우리 세대가(부모님 세대가) 더 노력해야지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자기를 돌보는 걸 최우선으로 살아가면 좋겠어요. 여러분도 자라면서 많이 힘들었겠죠.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했을 거고요. 그렇지만 어머니를 용서해 주세요. 엄마를 용서하고, 여러분이 행복하게 사세요. 상담도 꼭 받고, 삶에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많이 만드세요."
내 행복을 내가 챙기며 살아야지. 한 번 더 다짐한 하루. 좋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