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4
루브르에서 발견한 스벅에서 아이스라떼를 마실 수 있어서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카페인 충전하고 본격적으로 루브르 입장. 지금까지 갔던 그 어느 곳보다 쾌적한 관람환경이었다. 비수기고 목요일이라 그런가 사람도 많이 없는 편인 것 같았다. 드농관 계단을 들어서는데 니케 상이 보였다. 생각보다 훨씬 크고, 조명을 멋지게 받고 있어서 단 하나 놓인 것인데도 주변 전체에 장엄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천의 묘사는 정말이지 놀라워서 아니 그 배 부분이... 얇은 천을 표현한 게 진짜 미쳤고 ‘돌을 어떻게 이렇게 깎지’ 하는 생각만 계속 들었다. 정말 너무 아름다웠다. 계속 니케만 보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대전시실은 진짜 진짜 진짜 넓었다. 복도가 끝이 없었고 그림이 빼곡히 걸려있었다. 정말 너무 멋졌는데 글로 표현을 못하겠다. 내 표현력에 짜증이 날 지경이다. 아는 그림이나, 아는 이야기를 그린 그림이 나올 때 마다 신이 났다. 그리스로마신화랑 성경 없으면 뭐 그리지 싶을 정도로 아프로디테와 에로스, 프시케와 에로스, 그리고 성경 내용을 그린 그림이 특히 많았던 것 같다. 여체의 곡선을 정말 부드럽고 아릅답게 표현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초상화는 당장 ‘Bonjour’해도 딱히 안 놀라고 ‘어휴 가만히 계시느라 힘드시죠’ 해 줄 수 있을 만큼 사실적이었다. 아니 눈동자랑 피부를 어떻게 저렇게 표현하지.... 장식미술쪽은 베르사유를 다시 한 번 간 듯 했다. 엄청난 화려함이었다. 다음으로는 또 다른 회화 코너. 메디치의 방을 방문했다. EBS다큐로 예습(?)했을 때 본 방인데 실제로 보니 더 대단했다. 아 모나리자를 건너 뛰었네... 대전시실 옆방에서 모나리자를 봤는데 유명세에 비해 딱히 큰 감흥이 없었다. 아마 루브르의 모든 작품 중 안전거리가 가장 먼 작품인 것 같다. 내 뒤편에서 그림을 보던 한국인들이 ‘이게 뭐라고..’라는 말을 했는데 살짝 공감됐다. 이번엔 북유럽 회화 전시실. 앞서 이탈리아 작품들보다 전반적으로 색이 잔잔하고 어두운 느낌이었다. 기후 때문인가...? 2층 전시실이 다시 프랑스 회화로 이어졌는데 북유럽보다 확실히 색이 밝아졌다. 그리고 여긴 그림크기가 정말 감당이 안 될만큼 컸다. 이걸 대체 몇 년 걸려 그렸을지, 어떤 정성으로 그린 건지 감도 안 잡혔다.
폐관시간은 다가오고 아직 밀로의 비너스를 못 찾아서 직원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갔다. 여긴 정말 미로같다..! 겨우 찾아낸 비너스는 확실히 뭐랄까, 고급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내 맘 속 일등 조각상은 니케였으므로..... 돌아서서 폐관 전 마지막으로 니케를 보러갔다. 니케 사진을 집착적으로 찍어대다가 박효신의 ‘야생화’를 들었는데 곡의 느낌이 니케가 풍기는 분위기와 정말 잘 어울려서 막 가슴이 벅차올랐다. 루브르는 정말 너무 압도적이었고. 엄청나고.. 또...음... 아무튼 대단했다. 입을 계속 벌리고 다녀서 입이 말랐다. 곳곳에 습작하는 사람들이 참 신기하고 보기 좋았다. 폐관까지 꽉꽉 채워 관람한 후, 식당 찾을 기력도 없어서 눈에 보이는데서 밥을 먹었다. 오랜만에 산미구엘을 마셨는데 좋았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찾아온 몽파르나스 타워. 눈앞에 펼쳐진 야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반짝반짝하고, 예쁘고, 도시스러웠다. 8시를 맞춰 반짝반짝 점멸하는 에펠탑도 볼 수 있었다. 내일은 콜마르를 가는 날이라 기차시간 때문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 나름 실외-실내 체력 안배한다고 잡은 일정인데 실내 루브르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하지만 니케를 봤으니 충분히 가치 있다!
루브르 다녀온 날의 일기를 다시 보니 끊어질 것 같던 허리 통증이 떠오른다. 그만큼 쉽지 않았던 관람이었다. 전시품들을 하나하나 제대로 보려면 하루를 꼬박 써도 부족할 것 같다. 니케를 처음 마주하던 순간도 떠오른다. 우와....... 뭔가 말을 덧붙일 수 없는 압도적인 느낌이었다. 작품 자체의 크기와 섬세함도 멋졌고, 메인 계단 입구에 니케 딱 하나만 서 있는 배치도 웅장함을 더해주었다.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루브르에서 또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건 어디든 주저앉아 가져온 종이에 스케치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소리에는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그림에 집중하는 모습이 또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졌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예술에 대한 열정이 이 도시의 낭만이자 힘이 아닐까 싶었다. 나도 언젠가 다시 니케 앞에 앉아 루브르의 풍경 속 일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