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9
오늘은 가우디투어 날이었다. 아침부터 아이스라떼를 마시고 시작할 수 있었고, (프랑스에서는 아이스라떼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오늘 투어 인원이 나와 사촌동생 둘 뿐이라 개인 가이드를 고용한 것처럼 편하게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까사 시리즈를 쭉 관람했는데 정말 특이하고 예뻤다. 타일과 곡선이 가우디의 상징인 것 같다. 내부 관람 입장료가 거의 25유로라서 투어에서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아쉬웠다. 프랑스 박물관들이 국영이라 진짜 저렴한 거였구나 싶었다. 우리나라 궁궐 관람료는 너무 싼 것 같기도 하고 그랬다. 가이드님 설명을 들으면서 보니 작품에 얽힌 이야기들이 그려져서 좋았다. 그리고 구엘공원을 가려고 버스를 타는데 지도 안 찾아봐도 되고 길 검색 안 해도 되고 언제 내릴지 조마조마하지 않아도 되니까 너무 편했다. 이것이 가이드 투어의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인가.... 아무튼 편안하게 구엘공원에 도착했다. 입구의 과자집부터 정말 귀여웠다. 거대한 정수기(?)를 만들어낸 가우디의 아이디어에는 정말 감탄이 나왔다. 천재는 천재구나 싶달까. 파도길은 돌로만 만들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부드러운 곡선을 멋있게 그려낼 수 있는지 싶었다. 그냥 다 너무 최고.... 타일도 정말 반짝반짝 예쁘고 의자는 딱딱하면서도 허리를 정확히 받쳐줘서 편안했다. 날씨도 최고였고 가우디 작품들 진짜 짱짱......
또 다시 버스를 타고 대망의 바르셀로나 성가족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으로 이동했다. 멀리서 보이는 꼭대기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가이드님이 추천해주신 식당에서 괜찮은 점심을 먹고 성가족 성당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40년. 마차 사고가 없었다면 그 이상의 세월을 바쳤을 건축물이라니 끈기부족에 의지박약인 나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탄생의 면은 조각이 정말 섬세했고 수난의 면은 추상적이었는데 그 이유가 성경말씀을 그대로 표현하되 교황청에 신성모독으로 걸리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천재는 잔꾀도 남다르게 예술적이다. 가이드님과 헤어지고 성당 입장. 와. 첫 걸음부터 감탄만 나왔다. 리스본에서 만난 동행분이 자기는 성가족 성당 들어가면서 울었다던데 과장이 아니었다. 내가 조금만 더 신실하거나 섬세한 사람이었다면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빛이... 곡선이.... 높이가... 너무 멋졌다. 스테인드글라스 활용의 최대치를 본 것 같았다. 정말 최고였다. 2026년에 완공된다는데 그때 내 나이가 몇인가 생각해보다가 서른이라서 깜짝 놀랐다. 아득하다. 완공 후에 할머니를 모시고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바닷가를 들렀다가 보케리아 시장에서 저녁거리를 사서 들어왔다. 바닷가에 야자수와 가로등이 이어진 게 정말 예뻤다. 튀김은 바삭한 맛은 덜했지만 부드러워서 먹기 좋았다. 멋진 날이었다.
Day 20
오늘은 구엘 저택을 다녀왔다. 입구부터 철제 조각들이 아주 멋졌다. 미사도 드리고 음악연주회도 했다는 건물의 중심 방은 꼭대기부터 햇빛이 쏟아져서 정말 멋졌다. 그간 본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정말 ‘집’이라는 느낌이 드는 따스한 곳이었다. 가우디 작품의 핵심이라는 옥상에는 알록달록한 굴뚝들이 참 귀여웠다. 파란 바르셀로나의 하늘과 잘 어울렸다.
다음은 바로셀로나 대성당. 성가족성당의 명성에 밀리는 불쌍한 대성당이다.. 이따 있을 야경 투어 때는 내부 입장을 안 한 대서 먼저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무료입장 시간이 지나버렸다. 굳이 7유로를 쓰고 싶지는 않아서 외벽만 보고 돌아섰다. 고딕지구를 계속 돌아다니다가 까탈루나 주 청사 앞에서 개인시위를 하는 걸 봤다. 아직 뭔가 계속되고 있긴 하구나 싶어서 신기했다.
스페인에 온 김에 나도 ZARA 구경이나 한번 해야겠다는 생각에 들어갔다가 캐리어에 절대 안 들어갈 아우터를 사버렸다. 한국에서는 절대 이 가격에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도저히 두고 나올 수가 없었다. 어떻게 들고가지... 그리고는 마트에 갔다. 스페인 마트에서는 샹그리아를 1.5L 페트병에 팔았다. 만세!!! 샹그리아에 바게트과자, 고다 치즈에 육포까지 챙겨서 바다로 갔다. 바닷가 벤치에서 샹그리아를 마셨다. 갈매기 눈치 보며 치즈도 먹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술기운이 올라서인지 갈매기를 쫒으려면 ‘매기매기갈매기!’를 외치라는 애가 웃겨서 인지 기분이 참 좋았다. 숙소로 노래 들으면서 돌아오는 길에는 흥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저녁으로 먹은 문어도 되게 부드럽고 맛있었다. 문어랑 감자는 생각지도 못한 조합인데 정말 잘 어울렸다.
야경투어도 좋았다. 고딕지구 골목골목을 돌며 이야기를 들었는데, 낮에 혼자 걸을 때 보다 풍성한 시간이었다. 낮에 저 유치하고 귀여운 그림은 대체 뭐지?라고 생각했던 벽화가 피카소의 작품이라는 설명을 들으니 달리 보였다. 밤이 되어 조명을 받은 대성당은 낮보다 아름다웠고, 폭격을 피하려고 낮게 지었다는 소나무 성당은 소박한 예쁨이 있었다. 까탈루나 음악당 예쁜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서른이 아득하던 스물두 살은 스무 살 쪽이 훨씬 아득해 진 스물여덟 살이 되었다. (서른? 걍 내일임)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할머니에게 바르셀로나 성가족 성당의 웅장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굴뚝같지만 코로나를 앓은 이후로 체력이 많이 떨어지신 할머니는 이제 그렇게 먼 여행을 할 자신이 없다며 두 손을 내저으신다. 내가 할머니를 모시고 해외 자유 여행을 갈 수 있게 되기까지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할머니의 시간은 더 빨리 흘러버린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시위? 뭐가 계속된다는 거지? 정말 떠오르는 게 전혀 없어서 2017년 스페인 이슈.. 를 검색해봤다. 까탈루나 주 독립 관련 논의 및 시위가 있었다고 한다. 기사를 보니 그런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세상사 이슈가 너무 많다. 하나하나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중요한 것도 너무 많이 잊고 사는 것 같다. 그런데 과연 나한테 뭐가 중요하고 뭐가 안 중요한 걸까요... 그런 중심을 먼저 잡는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갈매기를 쫓으려면 '매기매기갈매기!'를 외치라던 웃긴 친구는 이제는 전 남자친구가 되었다. 저 일기를 적을 때는 그 친구랑 만나게 될 줄도 몰랐던 시절이니 인연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고 덧없다. 매기매기갈매기 지금 보니 안 웃기다. 아무래도 저 때는 호감이 있어서 웃기게 들렸던 것 같다. 사람 마음이란 얼마나 간사하고 또 대단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