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 - Day21&22
Day 21
동생이 준비가 늦길래 먼저 아침을 사러 나왔다. 보케리아 시장에서 간단히 먹을거리를 사는데 주인아저씨가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Thank you’가 한국어로 뭐냐고 물으셨다. ‘감사합니다’가 너무 어렵대서 ‘고마워요’를 가르쳐 드렸는데 그것도 너무 어렵다고 하신다. 그래서 그냥 ‘감사!’만 하라고 말씀드렸다. 감사 아저씨가 추천해 주신 ‘유카’는 진짜 맛있었다!! 닭고기를 삶은 고구마로 감싸서 튀긴 거에 과카몰리랑 소스를 듬뿍 얹어 먹는 건데 한 개 더 사 올걸 후회했다.. 그리고 음료수를 사러 숙소 옆 슈퍼에 갔다. 근데 여기 아저씨는 날 보더니 South Korea?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까지 하신다. 내가 놀라며 웃으니 엄청 뿌듯한 미소 지으심..^^ 다들.. 귀여우셔.....
그리고 어제 못 들어갔던 대성당에 다시 왔다. 아우렐리아 성녀의 관을 봤는데 나는 아무리 성스럽게 생각해보려고 해도 열세 살은 믿음으로 죽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생각밖에 안 들고 왠지 화가 났다. 앉아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 성당 내의 작은 성당? 에서 미사가 시작됐다. 머나먼 이국에서 익숙한 멜로디의 할렐루야를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성당 앞 플리마켓에서 귀걸이도 사버리고.. 츄러스 먹으러 왔다. 갓 튀겨 따끈따끈한 츄러스는 생각 이상으로 짭짤+고소하고 맛있었다. 예상치 못한 수제화까지 사버리고 계속 쇼핑하겠다는 동생과 헤어져 몬주익 언덕으로 갔다.
몬주익 성을 보려고 간 건 아니고, 그냥 높은 데서 노을 보면서 샹그리아를 마시고 싶었다. 적당한 자리를 못 찾아서 약간 괜히 왔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딱 좋은 자리를 발견했다. 눈앞에는 바르셀로나가 펼쳐져있고 손에는 치즈와 샹그리아가 들려있고 이어폰에서는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이 흘러나오고 거리에는 불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눈물이 펑펑 났다. 포르투에서는 왜 우는지 모르고 울었었는데 이번에는 왜 우는지 알 것 같았다. 감성 폭발이었는데 돌아오는 길이 힘들어서 감성이 희석됐다ㅎ...
저녁으로 맛있는 새우 감바스와 주인장님 추천받은 와인 베이스 칵테일을 마셨다. 오늘 포도주를 2L는 마시는 것 같다! 새우는 탱탱하고 마늘향이 솔솔 나는 게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샤워하고 짐을 쌌다. 짐을 싸다가 엄지손톱 찢어졌던 부분이 언제 떨어진지도 모르게 떨어진 걸 발견했다. 여행 내내 계속 거슬렸는데. 떨어지면 엄청 아프겠지 걱정했었는데 별로 안 아프다. 이번에도 걱정했던 일은 생각보다 별게 아니다. 걱정했던 일은 하나도 안 일어나고 상상도 못 한 사건과 기대치도 않은 풍경들을 마주했던 여행이 끝난다. 내일 내가 타야 하는 게 한국행 비행기가 아니라 세비야행 열차이길 바라지만 곱게 한국에 돌아가서 토플 공부를 해야겠지. 개강도 해야 하고. 5학기라니 으악...... 장학금과 여름방학 근로 월급을 다 바쳐 온 삼 주간의 유럽을 나는 오래 추억하고 한참 그리워할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엔 별거 아닐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많은 걸 느꼈던 여행이다. 풍경들의 아름다움은 말하기도 입 아프고, 한국인이 모두 한국에 사는 건 아니라든가 진한 갈색의 립이 누군가의 MLBB컬러가 될 수 있다든가 하는 사소한 것들이 편협한 나에게는 전부 느낌표였다. 오블리가다, 메르시, 그라시아를 수없이 발음했던 감사의 시간들을 정말 오래오래 기억할 거다!
Day 22
이제 정말 여행 끝! 한국 돌아가는 날이다. 아침 일찍 준비해서 비행기를 타러 갔다. T10 교통권 마지막까지 정말 알차게 썼다. 이놈의 아에로플롯은 지연이 일상이다 아주. 다신 안타 진짜.......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눈물을 머금고 내려놓은 선글라스와 같은 제품이 환승하는 모스크바 공항에서 세일하길래 운명이라는 생각으로 겟챠 해버렸다.
으아 아무튼 여행 끝. 서울 도착. 겨우 한달정도 떠나있었을 뿐인데 뭔가 이 도시가 낯설다. 오랜만에 일하는 내 방 보일러는 아직 골골대서 춥다.. 그래도 어쨌든, 내 방에 왔고, 여행이 끝났다! 여행하면서 상당히 자주 든 생각인데, 여행은 돌아갈 곳이 있음으로써 완성되는 것 같다. 돌아갈 곳 없는 여정은 방랑이지 여행이 아니지 않나. 떠나오고 싶었던 곳의 존재로 여행이 완성된다는게 좀 아이러니 하면서도 당연한 건가 싶기도 했다. 여행기를 하루하루 나눠 올리는 건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더 오랫동안 곱씹을 수 있고, 무엇보다 사진 정리가... 이렇게라도 안 했으면 평생 못했을 것 같다. 사진들을 보는데 사진 속의 내가 정말 행복해 보였다. 여행 중에는 뭔가 내가 더 예뻐 보였던 것 같다. 뭐 바뀐 것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냥 내가 나를 많이 아껴줬었나 보다. 오늘만 생각하고 나만 생각하면서.
이제 정말 개강만 남았네. 이번 방학은 뭔가 ‘알찬’ 느낌은 아닌데 ‘꽉 찬’ 느낌이다. 1월은 유럽에 있었고 2월은 내내 YBM에서 썩었으니까.... 내일 개강이고 모레 토플 시험인데 지금 약간 죽고 싶다 흑흑.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함께 가던 사촌동생은 발작을 일으키고 나는 몇 년 후에도 그 기억을 떠올리며 엉엉 울게 된다. 여러모로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오래오래 기억되는 여행이다. 저 때 스페인에서 산 수제화는 한국의 장마를 버티다가 장렬히 사망했다. 여행의 추억을 버리는 기분이라 아까워서 계속 신고 다녔는데, 본가에 신고 갔더니 엄마가 말없이 버려서 마음이 잔뜩 상했더랬다. 여행의 마지막 공항에서 산 선글라스는 바닷가에서 쓰고 소금기를 제대로 닦아내지 않아 녹이 슬었다. 수리업체를 찾다가 오히려 더 망가질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케첩으로 박박 닦아서 아직까지 꾸역꾸역 쓰고 다니고 있다. 미련이 많은 사람은 어떤 계절을 남보다 조금 더 오래 산다는데 (계절감, 오은 中), 나도 2018년의 유럽에서 꽤나 오래 살고 있는 것 같다.
이때 죽고 싶다고 징징대며 친 토플 덕분에 이 여행의 다음 해에는 교환학생을 떠났다. 스피킹 점수가 1점 부족해서 가고 싶었던 영국으로는 못 가고 네덜란드로 가게 되었었다. 네덜란드 교환학생은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영국보다 저렴한 물가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났으니 1 지망 영국을 못 갔던 것이 전화위복인 셈이다. 교환학생 중에도 여행을 많이 다녔다. 한국행 대신 원했던 세비야도 그때 방문했다. 그 시절도 나를 살리는, 설탕에 켜켜이 절인 기억의 일부다. 지금 생각하니 저예산을 체력과 깡으로 커버하면서 참 대단히도 뽈뽈거렸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 또 그렇게 몸으로 부딪치며 긴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까. 젊었다 젊었어! 이렇게 다 늙은 사람처럼 말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그러게 된다. 언젠가 교환학생 시절도 차곡차곡 기록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