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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혜 Eunhye Jeong Nov 01. 2020

이런 작곡 (1)


이런 작곡 (1)

하루는 작곡/편곡 의뢰를 받아 오랜만에 조성 음악을 쓰게 되었다. 기존의 테마와 전체 구조가 있었고 그중 한 섹션에, 어떻게 보면 나의 스페셜티라고 할 수 있는 피아노 솔로를 그들이 공연을 위해 섭외한 유명 피아니스트의 기량을 뽐낼 수 있도록 1분-2분 정도 화려하게 써달라는 가이드라인이 따랐다.


전체 구성을 고려하여 조바꿈 등의 포인트를 설계하고, 음악 내용을 스케치를 하는 시간은 평소 작곡할 때처럼 피아노를 두드리고 받아 적는 식이다. 아이디어를 피아노에 시도하는 일은 즉흥연주를 할 때와 같이 시원시원하게 흐른다. 음표와 리듬의 정확도보다는 그 구간의 의미와 역할, 어떤 ‘느낌’을 만들어내는 데에 집중하고, 어느 정도 그 아이디어가 성숙하면 구체적인 음과 리듬, 마디의 설정 등을 따져 기보 한다. 다시 연주해보며 교정을 보고, 발상 기호 등 디테일을 적어나간다. 그리고 음원 데모파일과 악보를 이메일로 전송하여 프로젝트를 완성한다.


딱 떨어지는 박자와 정확히 분절되는 리듬, 평균율에 맞는 화성의 수리적 법칙만 잘 따지면 별 문제(?) 없이 같은 음악이 반복되어 연주, 구현될 수 있는 이런 시스템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모습이다. 악보를 완성한 것으로 창작 과정이 끝났다고 느끼는 이와 같은 경우는 나의 음악을 할 경우엔 매우 드물다.



평균율과 매스프로덕션

나는 클래식을 유럽 전통음악이라고 부르고 싶다. 유럽 전통음악이라고 하여 비유럽인들이 해서는 안된다거나 다른 문화권 출신 사람들이 그 음악을 제대로 할 수 없다거나 하는 인종차별적인 생각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음악의 지역적 또는 문화적 뿌리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 세상의 단일한 기준으로 통용된다고 여기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음악이 모든 인류가 소통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라는 말을 우리는 종종 듣는다. 그러나 이는 다양한 문화적 뿌리에서 발달한 음악이 그들 인식 속 ‘음악 지도’에 존재하지 않을 경우 지은 결론일 때가 많다. 한 번은, 삼베처럼 한 음에 여러 음이 겹쳐서 거칠게 들리는 판소리의 발성을 단순히 잘못된 소리라고 판단을 내리는 음악평론가와 교류한 적이 있다. 그녀는 다른 법도와 다른 사상의 발로로 형성된 한국의 전통음악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개인의 취향을 넘어서서 끊임없이 도전적인 듣기를 해야 하는 음악평론가 조차도 ‘다른 음악 언어’를 이해는 커녕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자신이 보편적인 언어라고 믿는 음악의 기준 안에 머문다. 그녀와의 짧은 만남은 지역적 문화적 바탕, 즉 세계관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문화의 특수성을 전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 경험이었다.


한편으로 유럽 클래식 음악가들은 ‘전통’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는 그들에게 클래식 음악은 ‘모던’한 것, 당대의 가장 현대적인 것이었기 때문일 것 같다. 사실 큰 틀에서 옛것, 또는 기존의 것에 혁신을 일으켜 획기적이고 새로운 ‘더 나은’ 것을 창조해내는 것을 가치롭게 여기며 ‘발전’해온 역사가 클래식 역사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오늘날의 현실 — 현대 클래식 작곡가보다는 17세기와 19세기 사이의 유명 작곡가들의 곡들이 21세기인 지금 여전히 이 장르의 중심에 있다는 것은 조금 아이러니하지만 말이다.


‘클래식’의 정체성이 구축된 것은 평균율(equal temperament)의 발명에 이어 초기에는 조금씩 다른 버전으로 사용된 이 조율법이 점차 통일된 하나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지면서부터일 것 같다. 그리고 건반악기, 즉 18세기 초 발명된 피아노-포르테 불렸던 피아노와 16세기에 발명된 것으로 알려진 하프시코드와 같은 악기들의 보급과 더욱 일반화된 사용이 이와 맞물려 있다. 하나의 성대나 현을 울려 다양한 높낮이를 표현하는 목소리나 현악기와는 달리  건반악기는 평균율로 표현되는 모든 음 하나하나가 조율된 각 현들에 고정되어 정렬되어 있다. 조금 더 신속하게 평균율 안에서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할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자크 아탈리는 “소리 물질 sound matter인 음악을 사회의 전령사로 들으며(이해하며)” 음악의 정치 경제성을 탐구한 바 있다(“Noise: The Political Economy of Music”). 음악과 새롭게 발생한 음악은 앞으로 올 사회 경제의 새로운 구조를 예견하는, 예지적인 면이 있다. 평균율과 함께 그만의 화성적 규율과 어법을 큰 특징으로 발전해온 클래식도 마찬가지이다. 이성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르네상스를 시작으로 계몽주의로 이어지며, 산업화와 자본주의로 전 세계 인류의 삶에 공고한 뿌리를 내렸고, 지금까지 강력한 영향을 주고 있는 세계관과 평균율이 현재 ‘글로벌 스탠더드’로 여겨지는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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