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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혜 Eunhye Jeong Nov 01. 2020

스승을 찾다

참 많은 선생님들을 거쳤다. 부모라는 스승을 시작으로, 유치원에 발을 들인 그 순간부터 공식적인 교육이 끝난 시점까지 말이다. 직장을 다니며 혹은 사업을 하면서 틈틈이 공부하며 자기 계발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그 누구보다 음악가는 공부를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 같다. 이 공부라는 것은 책을 읽고 얻는 지식뿐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생동하는 만물의 동태와 이치”를 관물 찰기觀物察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음악이 물에 동한 인심이 소리로 형태화 된 것이기 때문이므로, 무엇보다 세상만물에 대한 탐구와 공부 없이 기교만 남은 음악엔 참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제 아무리 유명한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따라 기술적으로 완벽한 연주를 완성해내더라도 형태로서의 음악의 동기가 되는 이면의 내용은 따라 할 수가 없다. 이는 연주자 자신의 인생의 경험, 문화적 배경, 추구하는 예술적 가치 등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에 한 음악가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스승이 필요한 것은 스승이 갖춘 예술 정신과 철학을 배움으로서 앵무새처럼 스승의 길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설계하고 자신의 음악을 가꾸어나가는 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모두가 스승일 수 있고, 삶의 면면이 스승일 수 있다. 스승을 통해 자신의 예술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대학을 졸업하고서야 평생 마음에 품을 스승님을 찾게 되었다. 롤모델이기도 하고 현실적 조언을 해주는 선배이기도 하며, 음악가로서 갖출 기본을 가르쳐주시는 분들이다. 정말인지 존경하는 음악가를 직접 가까이서 교류할 수 있는 지금을 생각해보면 나는 참 스승 복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쉽게 내게 주어진 인연인 것 같지는 않다. 끊임없이 나의 음악의 길을 찾아나가면서 내가 어느 정도 그릇이 되었을 때 내 삶에 닿은 그런 인연 같다.



배일동

버클리 재학 시절부터 환경적으로 여의지 않은 와중에 나름대로 한국 전통음악 공부, 장구 연습 등에 열정을 쏟았다. 내 마음의 중심에서 우러나온 진지한 탐구였으나, 함께 마음을 나누며 공부하는 동료도 선생도 없이 불꽃을 이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은 시점에 왔다. 국악 전공자도 아닌 사람이 미국 도시에서 혼자 발버둥 치는 것에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나의 데뷔 앨범을 발매하면서 한국에 잠시 돌아와 머물게 된 2015년에, 그로부터 몇 해전 하버드 레지던시로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누었던 전통 타악 연주가인 김동원 선생님의 동료인 배일동 명창님의 페이스북에 연결되었다. 산을 뒤흔드는 듯한 힘으로 쓴 듯이 단호하며 날카로운 페이스북 글을 보며 감동을 받았다. 얼마 후 호주의 재즈 드러머인 사이먼 바커와 트럼페터 스캇 팅클러가 함께하는 공연에 가면서 처음 뵈었다. 나중에 날을 잡아 커피를 마시며 나눈 대화가 대단했다. 카페 냅킨에 볼펜으로 그림을 그러가시며 한글의 원리와 음악의 구조 등을 낱낱이  풀어내시는데, 마치 머리에 망치로 여러 번 얻어맞은 것 같았다. 전통음악, 특히 판소리의 원리를 설명하는 그 이론은 언어학, 의학, 미학, 지구과학 등을 거침없이 오갔다. 묵직한 내용을 들은 나는 집에 돌아가기 전 광화문 일대를 하염없이 걸으면서 대화 내용을 소화해야 했다. 이 내용을 체험적으로 이해하고 싶던 나는 결국 판소리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매 여름에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수업을 받거나, 많은 대화를 통해 문답식 공부를 했다.


나의 발성과 판소리는 대중에게 내놓을 만한 수준이 못되지만, 나는 판소리 수업을 통해 나의 음악관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정할 수 있게 되었고 피아노 연주법의 기본도 다시 세우게 되었다. 이는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판소리를 통해 음악을 배우고 음악가로서의 인생까지도 배운 것 같다.



와다다 레오 스미스

나는 창작자의 의식세계가 음악에 고스란히 반영된다고 믿는다. 의식, 생각, 감정 등이 모두 에너지 파장이라면 음악은 어쩌면 그러한 파장을 가장 닮은 에너지 형태의 예술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우연이면서 우연이 아니다. 음악과 음악 너머의 의식세계가 나의 것과 큰 공명을 이루었던 것이다. 와다다 레오 스미스와 비제이 아이어의 ECM에서 발매한 듀오 앨범을 접하고, 그의 소리에 마음이 이끌려으로 와다다의 셀로니우스 몽크를 주제로한 솔로 앨범을 구입했다. 기대를 하고 우편으로 받은 음반 패키지에는 누가 봐도 아티스트 자신이 직접 쓴 우편정보가 보였다.


그 글씨를 보는 순간, 내가 찾던 예술가라는 확신이 들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음악이 아닌 글씨에서 확신을 가졌다는 것이 의외일 수 있지만, 음악가의 한 음만큼이나 사람의 글씨 한 획에서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음악적으로 막힌 여러 의문과 질문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다다로부터 배운 작곡 언어에 대해서는 이 책의 다른 챕터에 구체적으로 적었다.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가끔씩 통화를 하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어떤 현실적인 점이 어려운지 나누면 냉철하게 피드백도 해주시고 조언도 해주신다. 작곡하는 것만큼이나 음악을 만들어내는 데에 대한 현실적인 부분(PR, 공연, 연주자들과의 관계 맺기 등)이 중요하고 어쩌면 60-80프로의 에너지는 그런 현실적인 부분에 쓴다. 그래서 와다다의 멘토링을 통해 나는 지지부진했던 활동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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