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존을 지키며 나를 갈고닦아 내는 일
나의 자존을 지키는 “먹고사는 일”
한 존경받는 음악가가,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하는 부인 덕에 음악으로 돈 벌 궁리할 필요 없이 오로지 자신의 음악에 타협 없이 몰두할 수 있었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예술적 가치를 위해 헌신하여 돈에 욕심부리지 않는 올곧은 사람이라는 면이 조명된 것이었지만, 내 맘은 조금 아찔했다. 심하게 말하면 처자식은 나 몰라라 하고 본인 좋은 일만 한 셈이다. 그의 예술이 어떤 대단한 경지에 이르렀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삶이 얼마나 영예로운 일인지는 모르겠다.
인생을 살면서 누군가에게 빚을 지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다만 어디선가 받은 베풂을 흘려보내면서 서로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다. 제아무리 고립되어 부모의 사랑도, 그 어떤 이의 도움도 받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신체는 공기를 흡-호하며 생명을 유지하므로 그의 몸은 공기의 질이 어찌 되었든지 공기에게 빚진, 기대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서로 화목하여 좋은 것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겨루면서 서로에게 기대는 삶인 그런 공생을 하는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관심이자 나의 길일뿐인 음악 공부한다고 스무 살 넘은 딸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신 부모님의 은혜는 내게 쉽고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유학 내내 무거웠다. 그래서 졸업 후의 목표는 스스로의 생활을 지탱할 만큼의 돈을 벌어 독립하는 것이었다. 워킹비자, 앨범 제작, 공부를 위한 워크숍 등의 나름 굵직굵직한 소비로 인해 특별히 모아둔 돈은 없지만, 이렇게 재정적으로 독립한 시간이 한 두 해 늘어나면서 내가 얻은 가장 것은 자존감의 회복이었다.
사실 스스로의 거취를 책임지며 자신의 음악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은 나만의 특별한 일이 아니다. 내 또래 동료 음악가들 모두의 이야기이다. 쓰리잡을 뛰며 생활비 이외의 음악 활동비까지 마련하는 음악가들이 많다.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며 씬 scene에서 인정받고 있는 재즈 오케스트라 작곡가인 한 친구는 영화음악 녹음 등 주어지는 수많은 ‘긱’을 뛰며 17명으로 구성된 자신의 "바바 오케스트라 Baba Orchestra"를 운영한다. 각 연주자에게 리허설 수당과 공연비를 모두 자비로 지급한다. 공연이 잘 되면 적자 없이 되기도 한단다. 이미 마련된 자금이 없이, 요즘 흔한 크라우드펀딩에 기대지도 않고 이 오케스트라를 지속한다는 것은 보통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영리 사업과는 달리 본인의 프로젝트가 상업적인 이익과 성장을 목표로 하지 않기 때문에, 돈만 두고 본다면 밑 빠진 독처럼 느껴질 만한 투자이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의 삶과 예술 활동비를 직접 책임지고 지탱하는 친구들을 보면 생기와 자신감이 가득하다. 재정적 독립은 정신적 독립을 이루고 최소한의 자존을 지키게 해 준다. 나에게 “먹고사는 일”이란 것이 그렇다.
티칭 잡
나의 "먹고사는 일"은 현재 가르치는 일이다. 사실 많은 음악가들이 레슨으로 생업을 꾸린다. 우리가 우러러보는 쇼팽도 그랬고 모차르트도 그랬다. 나도 졸업 후 피아노 개인 레슨을 줄곧 해왔다. 일주일에 5일 또는 6일까지도 레슨을 했다. 많은 학생들을 가르쳤고, 한해 두 해가 지나면서 가르치는 실력도 늘었다. 떨리고 어색했던 초창기의 레슨과는 달리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기도 하고, 꾸짖기도 하고 격려도 하면서 완급조절을 잘하게 되었다. 어느덧 나의 학생들이 하나둘씩 눈에 띄는 성과도 이뤄내었고 나름대로 인정받는 실력 있는 선생이 되었다.
물론 '잡 '은 커리어가 아니다. 나는 이 일을 사업으로 운영하는 것도 아니다. 나의 티칭 잡은 먹고사는 일을 지원하는 정기적인 일이 맞다. 그러나 나는 이를 단순한 생계수단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가르치는 일을 즐거이 하며 나를 단련하고, 나의 음악 창작활동이 아닌 행위에서 사회 속 나란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다. 모든 일이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바라보는 깊이와 무게에 따라 그 격을 달리한다. 직장인들의 출퇴근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시간을 지키며 하는 일이고 지치고 힘든 적도 많지만, 언뜻 취미생활로 보이는 등산과 같은 행위가 유희에 그치지 않는 것은 행위자가 스스로 그것을 수행으로 여기기 때문이 듯, 나 또한 가르치는 일을 나의 음악세계를 확장시키고 양육하는 일로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 그러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의 음악적인 기초를 더욱더 단단히 할 수 있었고, 아이들과 소통하며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선생으로서의 지혜를 곱씹어보며 나 스스로를 다시 가르치기도 했다.
나의 음악 세계가 더욱 깊어지고 성장할수록 나는 가르치는 일에 힘쓰고 싶다. 자신이 이룬 예술의 경지에 홀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후학에게 넉넉히 베풀고 그들의 성장을 돕는 일이야말로 인간다운 일이 아닐까 싶다. 한 세대가 구축한 정보와 지혜를 전승하면서 인류는 공동의 기억을 이어나가며 새 세대에 끊임없이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