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작곡 (2)
위에 언급한 작곡은 다소 큰 프로젝트의 일부였는데, 할리우드 작곡가로 블록버스터 영화음악을 많이 작업한 이가 완성한 주제곡 트랙을 조금 변형하는 일이었다.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기 전, 전체를 살피고 음악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상징과도 같은 “매스프로덕션”과 음악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할리우드 영화와 같이 많은 자본이 투자되는 경우는 창작과정에 실험성보다는 이미 시장에서 증명된 어법을 충실하게 구현하는 자질이 더 중요하다. 깨끗하고 매끈한 음원의 높은 질 (hi-fi) 또한 중요하고 이 또한 실력이다. 작곡에 있어서 영화의 특수성을 고려하여야 하는 것과 오케스트레이션과 프로덕션이 중시되는 면 때문에 작곡가에게 또 다른 복잡한 기술적인 능력을 요구하기는 하지만, 영화음악 자체를 잘 뜯어보면 음악적으로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작업한 음악도 4/4박자 8마디 길이의 주제가 두 번 반복되는 것을 하나의 패시지로 마단조와 사단조를 오가며 웅장하고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충실히 나타내었다. 화성도 모두 온음계적 화성 안에서 이루어졌다. 같은 작곡가의 다른 작업들도 살펴보면 오케스트라의 음역대와 적당한 드라마적 효과에 딱 맞는 마단조가 주로 사용된 것 또한 볼 수 있었다. 오케스트라 총보도 살펴보면 여느 총보가 그러하듯 복잡해 보이지만 매우 새롭거나 까다롭지는 않다. 웬만큼 좋은 오케스트라라면 짧은 시간 안에 매우 좋은 녹음을 단번에 만들어 낼 수 있을 그런 음악이었다.
내가 “매스프로덕션”을 떠올린 이유는 대량생산의 큰 물량이란 특성보다 대한 것보다는, 표준화/규격화를 통해 품질이 균일하게 보장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옛날에는 가정마다 장을 담그기 때문에 다양한 장맛이 각 가정의 기준이 되고, 아마도 각 해의 날씨와 농사가 어떻게 되느냐에도 따라 맛이 달라졌을 것이다. 음악 또한 같은 음형과 같은 가사로 같은 정체성을 갖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연주자의 심리와 공간, 시간의 변화에 따라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구현된다. 그러나 표준화를 통해 동일한 품질을 재현해 내어야 하는 음악은 끝없이 변하는 시공을 초월한 균일한 존재를 추구하는 운명을 갖는다. 나는 나의 프로젝트에서 변화무쌍한 세계를 적극 포용하여 음악의 외면 이전의 내면적 의미를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발현하게 되는 작곡을 추구한다. 내면적 의미가 우선하기 때문에 형식과 형태의 있는 그대로의 재현은 큰 의미가 없다. 창작은 작곡된 곡을 준비하는 때와 마찬가지로 그 곡이 연주되는 때에도 진행 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