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즉흥연주는 비단 음악적으로 완벽히 "열린" 음악 창작행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기서의 자유는 즉흥연주 이외의 음악 창작방식 전반에 걸쳐 통하는 궁극적인 도달점에 관한 것이다.
이는 음악가의 선택, 끝없는 선택에 관한 것이다. 그 선택은 신체, 인식 방식과 패턴, 의식 (그것이 무의식이든 초월 의식이든)과 연결되어있다. 반대로 말하면, 각자의 고유의 인식체계와 신체성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음악이다. 음악가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기민하게 밝혀, 소리라는 질료로 형성하고 세상에 내어 보이는 사람들이다. 이 내어놓음은 자신의 만족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공동체 속에서 나누어 소통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어떠한 "대중적"이지 못한 음악이 음악가 자기만족만을 위한 행위라고 지레짐작하지 않길 바란다.
창작자 고유의 인식 바탕과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 어떤 감상자가 -- 그가 전문가이든 일반 *대중이든 -- 단지 그가 감지할 수 없다 (undetectable)는 이유로 창작물의 가치를 묵살할지라도 그 존재적 가치는 결코 평가절하될 수가 없다. 전문가일수록 폭넓고 깊은 공부를 통해 다원적 가치에서 비롯한 음악적 가치를 이해하기 위한 자신의 인식 바탕을 끊임없이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취향을 넘어서는, 즉 자기 극복이 동반된 평론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자세가 없이는 자기 쇄신을 하며 창작하는 음악가들과 그 보폭을 같이 할 수 없을 것이다.
음악가의 자유는, 외부로 부터 허락된 행동 범위도 아니고, 외부적 영향으로 벗어난 한 주체에게 주어진 확장된 가능성으로서의 자유가 아니다. 독립적으로 구축한 법칙에 의거하여 예술을 운용하는 자율에 더 가까운 적극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자유 즉흥연주는 어떠한 음악적, 사회적, 정치적 틀을 벗어나 마구잡이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각 연주자가 외부적으로 주어진 틀 안에서, 그 바깥에서 혹은 그와 상호적으로 자신 스스로 설정한 법칙을 바탕으로 자주 autonomy적인 음악을 순간 속에서 만들어내는 행위인 것이다.
*대중: 음악가인 나 또한 일반 대중의 일원이다. 평론가도 아무리 그 전문성이 인정될지라도 언제든 "대중"의 위치에서 예술을 감상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한 분야의 전문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대중"일지라도 자신의 감상의 힘과 진정한 경험의 가치를 낮게 평가해서도 안된다. 음악가는 자신의 주체적인 힘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감상자와 그것을 함께 나누는 데에 일조하고자 한다. 나는 일반 대중을 이상적인 민주주의 차원에서 적극적, 지성적 객체들의 집합으로 바라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