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아들 산, 정수리 볼륨이 자존감을 세우다.
누구나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라던 시절이 있다. 나의 왕년은 꽤 예뻤던 외모였더란다. 출근하면 뒤에서 쫓아와 얼굴을 본다.
어머! 언니였어?
뭐가?
뒷모습이 너무 예쁘고 머리가 너무 반짝거려서 얼굴 보려고 앞질러 가려했거든.
그래서 앞모습 보니 어떠냐?
이런 다수의 경험과 재수 없게 들리겠지만 내가 봐도 예뻤다.
40대 초반까지도 20대의 일이 반복된다.
어머! 00이 엄마네.
뭐가요?
뒷모습이 아가씨 같아.
고마워요. 근데 앞모습 좀 어떻게 해줘요.
참, 00이 엄마는 욕심도 많다. 앞도 뒤도 다 예뻐. 예뻐.
그러던 어느 40대 중반, '어! 이거 아닌데.', '어! 이거 뭐지? 이상한데.'라는 물음표의 날들이 많아진다. 더 이상 내가 봐도 예쁘지 않고 남이 봐도 예쁘지 않은 상태,
그러면서 40대 후반이 되었을 때는 '아! 이제 끝났구나. 여자로서의 예쁨은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온다. 백화점 브랜드 화장품을 써도 얼굴은 텁텁하고 그 풍성하고 반짝거렸던 머리카락은 숱이 줄어 뒤쪽 정수리가 보인다.
미용실로 향한다. 뿌리교정펌, 일명 링거펌을 한다. 오메! 정수리가 완전히 가려지네. 그러나 그 가려진 뒤통수의 자존감을 유지하려면 모근이 자라나는 주기에 맞춰 2~3개월에 한 번씩 펌을 해줘야 한다. 두 번째 펌을 하고 얼마 뒤, 머리가 후드득 끊어지기 시작한다. 마치 탄머리 끊어지듯.
'아! 이제 링거펌도 안되고, 헤어 쿠션을 사볼까, 부분가발을 사볼까, 모발이식을 할까.' 하는 고민 중에 군대 간 아들의 은색 스프레이가 눈에 띈다. 아들은 머리숱이 너무 많아 다운펌을 하고도 01번의 하드스프레이로 또 옆머리를 누른다. 세상 불공평하기도 하지.
저걸 써볼까 하다가 치이익- 뿌리는 순간 90년대 미스코리아 사자머리처럼 굳어버리면 어쩌나, 하얗게 각질처럼 일어나면 어쩌나 싶어 써 볼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어느 날 중요한 약속이 있어 '에라 모르겠다. 뒤통수 훤히 보이는 것보단 낫겠지.' 하고 뿌려 봤는데 역시 하드 하다.
머리를 반듯이 들고 안쪽에 스프레이 뿌리고 드라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머리를 반듯이 내리고 바깥쪽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드라이, 정수리가 가려졌다. 그래! 그럼 앞머리 뽕도 한번 넣어봐! 앞쪽머리를 들고 치이익- 드라이, 멈춤. 미쳤다. 머리가 봉긋해지니 미모가 50프로 올라간 느낌이다. 그 위로 빗질을 해도 하얗게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을 '플레이킹'이라고 하는데, 아들 것은 그런 게 없어서 참 다행이다.
'동물은 털발 사람은 머릿발'이라더니. 좀 더 자연스러운 표현을 원한다면 안쪽에 하드스프레이를 아주 살짝만 뿌려 뼈대를 잡고, 전체적인 외부 고정은 가스형 중강도 스프레이나 볼륨미스트를 쓰면 될 듯해서 겉에 뿌릴 자연스러운 스프레이 구매 후 테스트해 보고 결과 좋으면 다시 후기 남겨 드리겠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낯설어질 때 느끼는 우울함은 내가 평생 가져왔던 강력한 정체성이 흔들리는 고통이다.
외모뿐만 아니라 마음의 갈리진 틈까지 메워준 스프레이. 나는 20대처럼 유행하는 화장을 원하는 게 아니라 맑아 보이는 피부톤, 지켜내야 할 머릿결과 볼륨, 깊이 있는 분위기를 원한다. 50대에게 정수리 사수는 생존의 문제. 가발을 살까 고민하던 내가 스프레이 한 통으로 자신감을 되찾았다. 나는 뷰티 블로거 아니고 '내 돈 아들산'을 써보고 너무 좋아서 글을 쓴다.
누군가 카페에서 아들의 키보드를 두드리며, 아들의 스프레이로 세운 정수리 볼륨을 뽐내고 있다면 그게 바로 나다. 힙(HIP)이 별 건가. 잃어버린 나를 방치된 물건으로 다시 찾아오는 것, 이게 진짜 힙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