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과 일요일 사이의 동네 공원, 그 분주함에 관하여

노처녀 성장소설

by 유니스 황

늦은 밤, 고요할 것만 같은 동네 공원은 꽤 바쁘다. 특히나 여름밤엔 더욱더. 트랙을 돌다 보면 길옆의 잔디밭에서 막걸리에 젖은 흙냄새가 솔솔 난다. 푸릇푸릇한 풀냄새, 나무 냄새 같은 좋은 냄새도 나지만 그 냄새를 맡으려 숨을 들이마시다 보면 쓰고도 시큼한 술냄새가 더 많이 맡아진다. 여름밤 공원의 냄새다.


인적 드문 늦은 밤의 공원이지만 그래도 운동 기구 앞엔 사람들이 꽤 있다. 어둠에 기대어 좀 더 용감하고도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열심히 몸을 움직인다.

정중앙의 스탭퍼에는 핫팬츠를 입은 두 명의 고딩이 나란히 스텝을 밟고 있다. 완전 핫핫팬츠를 입고 거침없이 움직이는 다리와 함께 1818로 박자를 맞추며 웃고 떠드느라 입도 분주하다.

그 앞 벤치에는 한없이 편안한 포즈로 핫팬츠 소녀 들을 바라보고 있는 배 나온 아저씨가 앉아있다. 가만히 여유로운 듯 보이지만 눈길과 마음만은 매우 바삐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아저씨의 끈적하고도 분주한 눈빛에 쓰디쓴 욕 한마디 던져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입이 다 썼다.


옆 도로에서 높은 언성이 들려온다. 택시 아저씨와 자전거를 탄 두 명의 청년이 시비가 붙었다.

“니들이 끼어들어 놓고 어디서 1818거려!얼른사과해!”

택시 아저씨가 소리를 지른다.

죄송하다는 사과 한 마디 듣고 다시 영업을 뛰러 가고 싶어 하는 기사 아저씨에게 청년들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으며 큰소리로 시비를 가리고 있다.

‘죄송합니다.’라는 한 마디로 시작했으면 이렇게 세 사람이 모두 내려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시작이 1818이었어도 ‘죄송합니다’가 발 빠르게 끼어들었다면 좀 더 빨리 끝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어떤 문제를 신속히 해결하기 좋은 열쇠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제일 하기 힘든 말일지도 모르겠다. 엘튼 존의 노래처럼.


3바퀴째 돌고 있다. 5km쯤 걸었다. 어둑한 주변 한가운데 심하게 밝은 형광등이 켜져 있는 공원 화장실. 너무 생뚱맞게 환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카페처럼 은은한 조명을 해놓는 것도 웃기잖아.’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멀리 화장실 안쪽에 사람이 보인다. 함께 좁은 문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남자와 여자. 남녀공용이 아닌데도 화장실 안쪽으로 같이 들어간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들어갈 땐 여자화장실과 남자화장실 중 어느 곳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빠르게 여자의 모습을 훑었다. 예상과 달리 지극히 일반적인 반팔 티셔츠에 특별할 것 없는 면바지를 입은, 적당히 나이도 있어 보이는 여자다. 어깨를 감싸 안은 남자의 팔과 함께 조금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이 보인다.

‘혹시 술을 많이 마셔서 토하러 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겠지.’라는 생각도 문득 드니 19금적 요소들로 앞서 나갔던 노처녀의 상상력이 괜히 멋쩍어졌다. 그 순간 유달리 좋은 청력을 가진 나의 귀는 화장실 걸쇠가 잠기는 소리를 멀리서도 잡아낸다.


‘헉, 그닥 좋은 환경이 아닐 텐데...’


돈이 없는 걸까, 색다른 자극을 원하는 걸까, 아님 도저히 참기 힘든 순간의 욕구 때문이었을까... 정확한 정답을 알 순 없지만, 쾌적하지 않은 공원의 공중화장실로 여자를 밀어 넣는 남자라면 난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결론을 즉각 내렸다. 상상만으로도 온몸에 구정물을 뒤집어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 4바퀴째는 갈등을 많이 하지만, 화장실 안에 있을 남녀의 결말이 궁금해져 갈등 없이 4바퀴를 돌았다. 그들이 들어간 공중화장실이 보인다. 화장실 바로 앞 벤치에 아까는 없었던 3명의 청년들이 앉아있는 것도 보인다.


‘아, 어떡해...’


‘그 남녀는 떠났을까, 아직 그 안에 있을까? 청년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거기 앉아 있는 걸까, 흥미로운 사운드에 이끌려 그곳에 앉게 된 걸까?’ 어찌 되었든, 쉽사리 그 자리를 떠날 것 같진 않아 보이던 청년들.


남녀공용화장실을 사용하다 남자가 들어오면 오도 가도 못 하고 남자가 볼 일을 끝내고 나갈 때까지 기다리던 적이 많았다. 내가 중간에 나가면 괜히 민망해할까 싶어 숨을 죽이고 안쪽에 한참을 갇혀있다 마침내 나가려는 중 또 다른 남자가 들어올 때의 난감함이란...


떠드는 청년들의 인기척에 긴장하며 덥고 비좁은 화장실 안에 갇혀 있을 남녀를 생각하니 내가 다 답답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남자의 욕망이 매우 재빠르게 꺼져서 청년들이 오기 전에 이미 그 자리를 떴을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가능성도 있다.

혹여 그렇다면, 갇혀있게 되는 오래가는 욕망과 그런 난처함이 오기도 전에 금세 식어버리는 욕망 중 그들에겐 어떤 것이 더 좋은 것일까? 마녀사냥 같은 프로그램에라도 물어보고 싶어졌다. 일단 어느 상황이라도 난 그런 그린라이트는 끄고만 싶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막걸리에 흠뻑 젖은 흙냄새가 바람과 함께 유유히 실려온다. 사람들도, 생각들도, 텁텁하고 쓰디쓴 공기마저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여름밤의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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