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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황 Jul 31. 2019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들

노처녀 성장 소설

호텔방에 들어가 잠만 자기엔 아까운 제주의 밤이었다. 물론 다른 이들과 저녁에 와인 한 병을 마시긴 했다만. 뭔가 아쉬운 마음에 고내리 바닷가 근처를 슬렁슬렁 산책하다 동네 LP바에 갔다. 맥주 한 병에 음악만 몇 곡 듣고 오자 싶었다. 아날로그 LP바답게 역시 좋은 음악이 흘러나왔고, 사장님은 혼자 온 내가 귀찮지 않을 정도로 드문드문 말동무를 해주셨다. 

생각난 김에 다음날 걸을 올레길에 관해 물어봤는데 사장님은 물론 그 주변에 있는 5~6명의 제주도민들 중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곳이 올레길 코스 중간에 있는 바였음에도. 올레길을 제일 많이 걷고 제일 많이 아는 사람은 제주 사람들이 아닌 육지에서 온 나였다. 역시 관심이 있는 만큼, 아는 만큼 보인다. 

차라리 올레길 보단 사려니숲이나 비자림을 가보라고 추천해주시는 사장님.

"거긴 너무 좋아해서 제 앨범에 <비자림에서>라는 곡도 만들어 넣었는 걸요~"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간단히 음악 하는 사람이라고만 소개했던 내 이름을 더 궁금해하시며 묻는 사장님께 유니스 황~이라고 답을 하는 그 순간이었던가? 바 옆자리에 커플로 앉아 있던 청년의 입에서 “현호형 누나요?”라는 놀라움 섞인 질문이 터져 나왔다. 


잠깐만.. 어느 현호 형이지? 페북 친구 중에도 현호는 물론 현우형들도 몇 명 계신데 그분들 후배인가 싶다가 문득 내 동생 현호?? 하며 물어보니 진짜 내 친동생의 친한 후배였다. 오래전 우연히 알게 되어 동생 밑에서 일도 배우다가 몇 년 전 제주로 왔다고 했다. 아~ 이런 느닷없는 우연이 정말 놀랍기도 하면서 절대 나쁜 짓 하며 살면 안 되겠다 싶은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한 병만 마시기로 했던 맥주를 내일에 대한 배려도 없이 5병이나 더 마신 밤. 반가운 이 인연을 뭔가 기념하고도 싶고, 예쁜 커플에게 뭔가 선물할 게 없을까를 생각했다. 편안한 일상복에 슬리퍼를 끌고 쌩얼로 나왔으니 가지고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아~ 캔맥이라도 사가려고 들고 나온 에코백이 있었지~’

부천 프로젝트하며 만든 하트비트 에코백. 오늘 처음 사용한 것이니 주고 가자 싶었다. 그럼 내 물건은 어디에 들고 가나 생각하다가 지갑, 가디건, 룸키 등등을 사장님께 얻은 깜장 봉다리에 주섬주섬 넣어 왔다. 


난 마음을 표현하는 일에 그리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여행지가, 영화 같은 우연한 만남이 나를 그렇게 움직였다. '반갑고 즐거웠어~'라는 말뿐이 아니라 처음 만난 누군가에게 내 가방을 선물로 주고 난 기꺼이 못생긴 깜짱 비닐봉다리를 들고 돌아오는 행동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던 순간. 진심이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를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혹여 누군가는 술의 힘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만… 


P.S 유니스 황의 <비자림에서>라는 곡도 안 들어볼 순 없잖아요? 

관심 있으신 분은 유튜브 링크를 클릭해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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