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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황 Aug 31. 2019

인생은 타이밍!

노처녀 성장 소설

책을 읽으며 문득문득 하늘을 보다 보니 오늘의 노을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창의 왼쪽으로 쏠린 노을을 보기 위해 점점 더 오른쪽 구석으로 들어가 시시각각 변하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그냥 나가서 보면 더 잘 보일 텐데 왜 이렇게 힘들고 구차하게 보고 있나 싶어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문득 어제부터 샤워를 안 하고 있던 게 생각나기도 했고 상쾌한 바람 앞에 당당하게 머리칼을 날리고도 싶어, 샤워를 하고 나와 노을이 제일 잘 보일 탁 트인 전망의 공원 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거리는 이미 밤의 어두움과 먹구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13층에서 보이던 먼 곳의 노을은 보이지 않았다. 나온 게 아까워 산책이라도 하고 들어갈까 했다만 쪼리를 신고 나왔기에 좀 이따 운동화를 제대로 신고 산책하자 싶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15명의 시인 이야기를 읽었다. 잠시 쉬었다 읽자 싶어 걷기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양말에 러닝화까지 든든하게 신고 내려갔다. 싸늘한 바람이 기분 좋았다. 런키퍼를 켜려고 잠시 멈췄는데 스프레이를 뿌리는 듯한 가느다란 빗방울이 얼굴에 느껴졌다. 그 정도의 비를 못 맞을 이유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굳이 맞으며 꼭 걸어야 할 이유도 없었기에 다시 집으로 올라왔다.


허기가 졌다. 따뜻한 무언가가 먹고 싶었다. 사자마자 냉동실에 넣어둔 크리스피크림이 생각났다. 혼자 살면서 생긴 버릇 중 하나는 당장 못 먹을 것 같은 빵이나 햄 등은 바로 냉동실에 넣는 것이다. 맛을 생각해 바로 먹을 것처럼 냉장실이나 상온에 두었다가 봉지 채 버린 적이 다반사였기에.

설탕 가득한 도넛을 하나 꺼내어 전자레인지에 40초쯤 돌리니 뽀송뽀송 다시 탄력을 찾았다. 기대를 안고 한입 먹어보니 냉동실 냄새가 미세하게 느껴졌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는데… 하고 생각을 해보니 한 달은 방치되었던 것 같다. 

하나도 먹지 못한 하프더즌을 지퍼락에서 음식물 쓰레기 봉지로 이동시켰다. 냉장실을 열어 몇 주나 넘긴 뜯지도 않은 두부 두 모와 장기간 실험에 임하여 이젠 마사지 용도로도 사용하기 꺼림칙한  요플레들도 처리를 했다.


이미 최고의 때를 놓쳐버린 것, 유효한 기간을 지나버린 것들을 많이 마주한 날이다. 혹여나 마음 깊이 모셔두느라 최고의 때를 놓쳐버린 감정들은 얼마나 많을지, 나중을 위해 누리기도 전에 냉동시킨 현재는 또 얼마나 많을는지...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그때그때의 순간을, 그 좋은 감정들을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에 누려줘야겠다. 

올가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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