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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황 Jul 03. 2017

스에 불과한.

노처녀 성장소설

인사동에서 몇 개의 전시를 신속히 보고 간만에 작가님들과 맥주 한잔을 했다. 처음 보는 소설가 B작가님은 평소 약간의 편견이 있던 여자 작가님 특유의 느낌과는 달리 편안하고 친근한 분이셔서 정말 유쾌했다. 그렇게 즐겁던 시간에 새로운 인물이 합류함으로 약간의 온도 변화가 생겼다. 시인님의 친구인 스님이 애인과 함께 나타나신 것이다. 


난 크리스찬이지만 타 종교에 그리 반감이 없는 사람이다. 어쩌면 목사님들의 책 보다 스님들의 책을 더 많이 읽었고 그들의 좋은 말씀도 귀담아들으려는 축에 속한다. 종교인들의 엄격한 삶에 존경을 보내며 심지어 룰에 갇히지 않고 기행을 일삼는 분들의 삶까지도 존중하려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 만남으로 인해, 목사님이나 스님이 아니라 ‘목사','스’로칭해야 하는 사람들이 세상엔 너무 많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세상의 편협한 틀을 벗어나 자유로운 것은 좋지만... 그렇게 자유롭고 싶고 성에 대해, 삶에 대해 막말을 하고 싶다면 왜 굳이 그 직업으로 있으며 다른 종교인들까지 욕을 먹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애인들 자랑을 하실 거고 이성과 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하시다면, 카바레나 콜라텍 같은 곳으로 주거처를 옮기셔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이분은 내가 음악을 한다고 하니 처음 본 나에게, 자신이 요즘 떠올린 악상들이 엄청 많이 있으니 곡을 정리해주고 악보로 만들어 달라고 하셨다. 물론 만난 것도 인연이니 공짜로. 그리고 스님은 원래 무소유의 아이콘이니 돈을 바라는 네가 더 이상하다라는 뉘앙스를 담은 눈빛을 시전하셨다.

심지어 그 일을 해주겠다는 음악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꽤 있으나, 그들의 실력이 마음에 들지 않기에 나를 믿고 특별히 부탁하는 것이라는 멘트로 뭔가 수상의 영예도 덤으로 안겨주셨다.

뭐 나름 한다 하는 스님이 부탁하면 ‘영광입니다’라고 대답을 해주길 바랬던 걸까? 아니면 세상을 너무 모르시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우리에게 심하게 만연한 뻔한 상식의 장벽을 허물고 계신 걸까? 어찌 반응을 해야 하는 건지 살짝 혼란스러워졌다.


스님의 너무도 당당한 요구에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이 오히려 더욱 불편해할 무렵,

“그건 그렇게 쉽게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런 일은 제 직업과 관련된 일인데 그렇게 할 순 없죠.”라고 대답을 했다. 

스님은 자신이 원하는 정답이 나오지 않았음이 아쉬웠는지 지금 그렇게 쉽게 결정하지 말고 나중에라도 천천히 생각해보라고 여운을 남기셨다. 

어설픈 희망 고문 따위는 잠깐의 실망보다 더 안 좋을 것 같기에 

“전 안 하는 거, 하기 싫은 건 절대 안 해요”라고 더욱 단호히 대답해줬다. 

이럴 땐 평소 돌직구를 잘 던지며 예의상의 가식적인 말을 잘 하지 않는 나의 성격이 고맙게 느껴졌다.


일개 민간인에 불과한 내 수준으론 그분의 공력이나 불심의 수준을 알 수 없지만 일단, 오늘 그는 나에게 하찮은 스님, 아니... ‘스’에 불과했다. 어쩌면 세상이 정해 놓은 틀에 아직 갇혀있는 나의 한계로 인해 그 모든 경계를 초월한 그 대단함을 알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처음 본 사람들에게 함부로 말함으로 자신의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사람들은 일단 인정할 수 없다.


스님 코스프레, 목사님 코스프레하시는 분들은 괜히 열심히 하시는 다른 분들 욕 먹이지 말고 부디 종목을 바꾸셨으면 좋겠다. 그냥 기인, 아님 차라리 허ㄱㅇ아저씨처럼 어차피 욕먹는  정치인 코스프레로 영업하시는 게 어떠신지 추천드린다.

깊은 산 외딴집에 있다고 다 주지 스님이 아니고, 건물 한켠에 교회를 오픈한다고 다 목사님은 아니지 않은가. 종교인이라는 이름으로 이런저런 내려놓음을 실천하시더라도, 부디 예의와 상식의 내려놓음만은 굳이 실천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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