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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황 Jun 24. 2017

서른아홉 노처녀의 생애 첫 소개팅 6

노처녀 성장소설

#11. 화해의 인증


다음 날 출근 후 적당한 시간을 골라 용기를 내었다. 선뜻 내키지는 않는 화해의 전화를 갤러리 K에게 걸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미술작가들과 콜라보레이션도 나름 자주 하며, 앞으로는 더욱 많은 교류를 해야 할 내가 그와 적이 되는 것은 마이너스되는 일이었다. 

‘그래, 내편은 아니어도 적은 만들지 말자. 그게 현명한 것이다.’

그날 느꼈던 속상함은 적절한 선에서 나도 그들의 힘을 사용할 날이 오면 보상받을 수도 있겠지~라는 39살 실장님의 냉정한 계산기가 두드려졌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나의 잘못한 부분을 바로잡았다. 이런 선사과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던지 나는 사과할 게 없다고, 고운 분이셨는데 자기가 너무 미안하다고, 나중에 꼭 다시 봐서 제대로 사과할 기회를 달라고 갤러리 K는 말했다. 난 꽤나 정중하고 관대한 듯한 목소리로 부드러운 분위기를 적절히 만들었으며 또 다른 정중한 사과와 씨디를 보낼 화가 H의 번호를 묻고 첫 번째 미션을 완성했다. 


갤러리 K가 알려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는데 안 받는다. 

‘아, 주소를 빨리 알아내야 씨디 보내는데.’

 며칠 뒤면 그는 3개월간의 레지던시 작가로 초대받아 프랑스로 간단 말이다. 

‘떠나기 전에 씨디를 보내서 생각보다 하찮고 가벼운 내가 아님을 인증받아야 하는데.’ 

(이놈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란..) 


일단 전화를 안 받은 건 자기 탓이니깐 조금은 예의 없지만 문자를 보내기로 해본다. 예의 바른 사과와 적절한 나이스함 그리고 조금은 사무적인 주소의 질문이 담겨있는 문자였다. 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답이 없다. 

‘영화를 봤어도 끝날 때가 되었을 텐데. 아, 역시 무리였나?’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 국번에 1이 섞인 이상한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저 H입니다. 그날 잘 들어가셨나요? 사과드리고 싶어 전화드렸어요. 그땐 정말 미안했었고 저도 마지막엔 좀 취해서 깔끔하고 정확히 행동하지 못했었습니다. 이해해주세요.” 블라블라블라~ 


난 아저씨들까지는 나름 이해할 수 있는 수위였지만 그 어린 여자애의 분위기 파악 못하는 생각 없는 행동 때문에 더 화가 났었던 거라고, 내 버릇없었음에 대한 변론을 잘 마무리 지었다. 


“근데 바쁘셨나 봐요? 문자를 잘 안 보시던가. 참, 이 번호는 아까 문자 보낸 번호랑 다르네요.”


“네? 무슨 문자요? 저한테 전화 거셨었다고요?”


“제 문자 받고 전화하신 거 아니에요?”


그의 말에 의하면 그는 술병이 나서 다음날은 하루 종일 못 일어나다가 오늘에서야 정신을 추스려 상황을 정리해보고는 제일 먼저 나에게 사과 전화를 했다고 했다. 또한 그는 핸드폰이 두 개라는 것, 내가 전화 건 번호는 잘 안 쓰는 번호라 일단 전화도 못 받았으며 내 문자도 아직 못 본 상태라고도 말했다.

이 통화 후에는 K에게 전화해 나에 대한 사과를 받아낼 것이며, 처음엔 그냥 놔두었던 갤러리스트와도 거리를 두고 정확히 행동해야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했다. 


엄마는 종종 얘기하셨다.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고. 

이것이 사실이든 진실이든, 급조해낸 각본이든 조금은 어리숙하고 순진하게 나이만 많은 작가의 진심이든 그건 이미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중요한 건 스펙타클하진 않지만 나름의 훈훈한 엔딩으로 이 일이 마무리되어간다는 것이다. 또한 메인 주인공이던 내가 그리 하찮은 아이가 아니었으며 나의 행동에도 그리 무리는 없었다는 증명서를 받아냈으니 그걸로 되었다. 나는 받아낸 주소로 냉큼 씨디를 보내고 1박 2일간의 이 사건을 깔끔히 종결지었다.


#12. 결론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좋은 사람에겐 장점을 배우고, 나쁜 사람에겐 그 단점을 배우지 말자라는 교훈을 만들어내는 나름 교훈쟁이스러운 부분이 내겐 있다. 어떤 안 좋은 사건에서도 교훈을 생각해내고 무언가를 얻어내는 손해 보기 싫어하는 알뜰함이 나에겐 상당 부분 존재한다. 


이 일을 종결짓고 나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이었을까? 내가 발전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다 나름 좋은 소스가 될 것 같으니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구구절절 매번 정확하게 설명을 하느니 간단하게 글로 써본다면 게으른 나에게 모티베이션도 되고 좋을 것 같았다.

컴플렉스는 말로 인정해버리는 순간 더 이상 컴플렉스가 아니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래 일단 쓰자!’


처음엔 2~3장쯤으로 끝날 줄 알았던 글이 A4 11장을 넘어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오늘은 잠도 아침 8시에 자서 3시간 자고 일어나 다시 글을 쓰는 열정적인 작가 놀이를 하고 있다. 종강을 해서 이틀 술과 야식을 안 먹은 상태로 밤을 샜더니 개강 후 늘었던 3kg의 몸무게 중 이틀 만에 2킬로가 빠져있었다. 

‘그래, 좀 힘들긴 했지만 나름 남는 장사인데~!’


“가만히 정지해 있는 건 퇴보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라는 외수 선생님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이리 하여 변화를 결심한 나는 내 인생에 안 하던 일 #1. 소개팅 미션을 끝냈고, 

안 하던 일 #2. 나의 이야기를 이렇게 남들에게 솔직히 공유하는 미션도 어찌어찌 마치게 되었다. 


당분간 소개팅은 안 할 거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쉽다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그래 놓고 막상 제의가 오면 조금 주저할게 분명하지만. 

이른 아침 올라온 글을 보고 걱정의 장문 메시지를 보내신 선생님을 안심시켜드리기 위해, 날 위해 너무 심하게 불끈 달아오르던 사람들을 위해 난 3시간 눈을 붙인 뒤 일어나 급하게 엔딩을 써 내려갔다. 그들 마음에 들지 안 들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내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는 엔딩을, 그들이 갤러리로 쫓아가 진상을 치는 일은 없을 그런 엔딩을 써 내려간다.


누구나 투사가 될 수는 없고 각자의 롤과 성격이 있는 한 우린 우리가 기대하는 똑같은 엔딩을, 모두를 만족시키는 완벽한 엔딩을 만들어 내기는 힘들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날은 여전히 무지하게 덥고, 104년 만의 가뭄이라는 기사가 떠돌고 있고, 비는 오늘도 오지 않고 있다. 이제 씻고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올 시간. 충분히 스펙타클한 드라마 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난 걸로, 한참 동안의 빵빵 터지는 웃음을 불러오는 욕타임의 소재를 갖게 된 걸로도 충분하다. 

더 이상을 욕심부리진 않고 흘려보내겠다. 하지만 하루빨리 비가 와주었으면 좋겠다. 혹시라도 내 마음 깊은 곳에 남아있을 앙금까지 다 씻어줄 비가 오늘 밤쯤엔 좀 시원스레 퍼부어주었으면 좋겠다. 


끝~!!


보너스 OST로 유니스 황의 소나기 한번 듣고 가실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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