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제안

노처녀 성장소설

by 유니스 황

몇 년 전의 일이지만 이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오글오글 두근두근~ 짧은 순간이었지만 무수한 생각과 감정의 변화들을 마주할 수 있었던 날의 기억이다.


평소보다 일찍 나갔다가 인사동에서 몇 개의 전시를 보고 친한 선생님 전시 뒤풀이까지 참여하고 집에 왔던 날. 종일 나다니느라 핸드폰 사용을 많이 했기에, 전시 뒤풀이에서부터는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던 핸드폰이 아예 꺼져버렸다. 집에 돌아와 피곤한 몸을 추스리며 핸드폰을 다시 켰다. 페북이며 카톡이며 문자며 여기저기 확인 못 한 숫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주춤하던 트위터에도 확인 안 한 메시지 숫자가 떠있었다.


트위터에서 페북으로 무게 중심을 옮긴 지 꽤 되어, 트위터엔 아주 가끔 짧은 글만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위터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트위터만으로 소통하는 몇 명의 특별한 친구들 때문이었다. 난 페이스북에서도 친구를 그다지 적극적으로 맺지 않지만 트위터에서는 더욱더 친구 맺는 것을 신중히 했던 타입이라 한 번 맺은 친구들은 좀 더 마음을 쓰고 가끔씩 안부도 묻곤 했다.


집에 들어와 충전을 시키며 확인한 트위터 메시지. 내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친구 중 하나인 모 감독으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유명 감독이었던 그. 그리 친절한 트윗을 하지 않는 분이셨지만 가끔씩 들어와 반가운 멘션도 달아주시고 과찬도 하고 가시는 분이셨다.

난 그의 스타일리시한 영화를 좋아했어서, 진정 감사한 몇 분 빼고는 보내지 않았던 내 3집 음반도 그분에겐 보냈었다. 물론 보낼 당시 외국에 계셨던지라 언제 받았는지도 모르고, 받았어도 별 답은 없어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었다. 그러던 그분에게 12시 넘은 시간에 트위터 쪽지가 와있었다.


물론 그분과의 인연은 내가 주로 활동하는 새벽 2시쯤의 트위터에서 종종 마주치며 생겨난 것이긴 하였지만, 새벽 한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무슨 개인적인 메시지이실까? 싶었다. DM으로는 한 번도 연락하지 않는 사이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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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 보러 오실래요? ^^”


짧은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앗~ 야심한 시각에 이건 무슨 소리일까?'

이거, 자기들끼리 술 마시다 혹시나 하고 불러내는 메시지? 괜히 조금 유명하다 싶은 사람들이 술 마시다 만만한 누군가를 불러내고 그러면 그들은 그 간택에 너무도 황송해서 넙쭉 달려 나가는 그런 시추에이션???

아니 이거 이거~! 나를 지금 뭘로 본 거지?? 트위터에선 페북에서처럼 초미녀라고 까불지도 않고 나름 진중하고 간단한 트윗만 하거늘.... 싱글이라고, 음악 하는 애라고 뭔가 만만하게 본 건가?


문득, 진정 비밀리에 톱스타를 만났던 내 친구의 후배가 떠올랐다. 아무 때나 그분께서 시간 나실 때 불쑥 부르면 24시간 주야 대기처럼 나가던 그 후배. 어느 모로도 빠지지 않는 진정 훌륭한 엄친딸이어서 어지간한 유명인사나 연예인들의 대시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그녀가 마음을 뺏겨 힘들어했던 그 사연이 심야의 이 짧은 메시지와 오버랩되었다.


‘아, 이거 괜히 시험에 들면 안 된다... 조심조심~’

이런 마음을 먹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아... 근데... 톱스타라니... 유명 감독이 말하시는 톱스타란 과연 누구란 말인가~!’

하며 슬며시 호기심과 궁금증이 발동하기도 했다. 뭐라고 답을 보내야 하나 2~3분쯤 고민을 했다. 얼마 전 내 의지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우연과 오해로 생긴 달갑지 않던 구설수 해프닝도 떠올랐다. 그러다 내린 결론.


‘아니, 내가 그래도 나름 지조 있는 아티스트 유니스 황인데... 이 자가 어디서 수작질이지? 초대를 하려면 정식으로 제대로 된 초대를 해야지, 이딴 식으로 밤늦게 술 마시다 즉흥적으로 하는 초대엔 분명 나에 대한 믿음이나 신뢰, 혹은 진정성이란 찾아보기 힘든 것이지. 암만~’


난 혹여나 오랜 독거 노처녀 생활로 인해 단호하게 내린 나의 결론이 시험에 들까 싶어, 얼른 화장부터 지웠다. 화장을 지우고 씻으면서도 내내 든 생각.

‘음, 아무리 봐도 저건 나한테 실수한 거야. 자기가 혹여나 톱스타 당사자라 할지라도...’


다 씻고 난 후, 그래도 무시할 수는 없기에 답장을 보냈다. 메시지를 이제야 확인했다고, 시간이 너무 늦었다고, 늦게 답 드려 죄송해요 라고, 간단히. 그 정도면 알아듣겠지 싶었다.


답장을 보내고 트위터 타임라인을 보니 그분이 3분 전 올리신 트윗이 떠있었다.

‘아~ 아직 계시는구나. 뭔가 궁금하다 궁금하다... 내가 만날 수도 있었지만 당당히 거부했던 톱스타는 대체 누굴까 누굴까...’

난 슬쩍 그의 트윗을 타고 들어가 그의 타임라인을 훑어봤다. 혹여나 지금 누구랑 있는지, 어느 모임에 있는 것인지에 대한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은 종종 친한 스타와의 만남 인증샷을 실시간 올리실 때도 있기에...


두근두근~ 그의 타임라인을 내려보다가 흠~~~씬! 놀랐다.

“제가 좋아하는 배우 **의 영화 <톱스타>를 배우들 및 트윗친구들과 함께 보고 싶어 영화관을 예약했으니 원하시는 분들은 신청 응모를 하시면 추첨에 의해 톱스타 영화티켓을 드리겠습니다.”라는 안내 트윗이 떡하니 올라와 있었다. 관련 극장의 이번 특별 이벤트 안내와 언제까지 신청하라는 리트윗도 함께.


헉!!!! 내가 생각해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 상황!

'클라따~ 오또카지, 오또카지...?'

역시 혼자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자기만의 틀에 갇혀 상상과 오바의 날개를 활짝 펴게 되는구나~ 싶은 게... 나름 쓸만할 때가 많다고 생각했던 내 과도한 상상력이 급 부끄러워졌다.

‘아,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으니 신속하게 물을 타고 내 오바를 감춰야만 해! 서두르자 서두르자~’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초대해주신다면 꼭 보고 싶습니다. 톱스타!”


나는 그전에 보낸 메시지와 연결된 문장인 듯 조바심이 묻어나지 않는 명랑함을 한껏 묻혀 두 번째 메시지를 신속히 보냈다.

‘부디, 그분께서 알아차리시면 안 되는데.. 설마 긴 말을 하지 않았으니 두 메시지를 연결해서 보면 가당찮은 내 의심과 오해를 눈치채지는 않으시겠지?’

두근두근 불안한 마음으로 답변을 기다려봤지만, 그분의 답 메시지는 한참을 오지 않았다.

‘분명 주무시는 것이겠지, 조용히 있다 보면 영화 초대 확정 메시지가 다시 올 거야... 반.드.시!!’ 라며 초미녀다운 초긍정의 마음을 가져보았던 그 순간. 어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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