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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황 Jul 31. 2020

일상에서 낚는 시

김정수 시집 <홀연, 선잠>을 읽고

지난 주말엔 일어나 양치만 하고 소파에 앉아 고요 속에서 시집을 읽었다. 시집으로 하는 일상의 디톡스랄까. 사놓고 몇 편 읽지 못했던 김정수 시인의 시집을 천천히 음미했다.


몇몇의 지인들과 함께 삼양목장에 다녀와 쓰셨던 "삼양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법"은 다시 읽어도 삼양라면이 이 시를 왜 안 사고 활용을 안 하고 있는지가 정말 안타까운 수작이었다. (지금이라도 삼양라면은 이 시를 활용하시길 추천드립니다. 그 시에 제가 두어줄 등장 해서 그러는 건 아닙니다만ㅎㅎ)



"생일"이나 "봄밤"도 정말 아름답고 따뜻한 시라 읽은 후에도 그 울림이 오래갔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을 것 같은 시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 속에서 겸손하게 시를 낚아 올리는, 심지어 이런 것도 시가 될 수 있구나 감탄이 드는 시인의 시선과 마음이 느껴져 시인이란 존재가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사석에서도 몇 번 만났고 함께 일한 적도 몇 번 있어 그의 선한 품성을 조금은 안다. 

역시 그렇게 선하고 성실하게 일상을 살아내니 이런 시가 나오는구나 싶었다.  나도 부디 착하게 잘살아 이런 좋은 작품을 건져내야지~하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던 순간들을 만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공범


어른이 앞에 서있는데

감히, 일어나지 않는다며

잠자는 발을 툭툭 걷어찼다


시험지처럼졸고있던학생이자리에서벌떡일어났다


요즘 젊은 것들은 말이야

참 버르장머리가 없어


학생이옆칸으로옮겨갔다버르장머리를남겨두고무안이따라갔다


손안에 잡힌 외면이 소리를 닫았다

안락이 자글자글 짧은 다리를 꼬았다


두 개의 역을 지나자

겨우,

어르신이 전철에서 내렸다


일제히, 벼슬이 붉어지는 사이

외면을 외면했던 자리에 안락을 끌어내렸다


그래도, 사람이라고

앉았던 자리가 따스했다


- 김정수 시집 <홀연, 선잠>, 천년의시작 출판


며칠 동안 이 시가 계속 가슴에 남았다. 요즘 같은 시대를 살며 함께 나누고픈 시다.  나도 지하철에서 저런 할아버지를 만난 비슷한 경험이 있다. 20대의 젊은 혈기로 가득찼던 난 엄청난 고집불통 꼰대 할아버지에게 지지 않고 그냥 싸웠다만, 시인은 이런 시를 건져서 우리에게 울림을 주니 고맙기도 하고 뭔가 부끄럽기도 하다. 


최소한 앉은 자리는 따뜻한 사람들이니, 사람의 온기를 잃지 않는 우리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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