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와의 적당한 거리를 두려는 도시 사람들의 속내는 두려움
어릴 때 나는 1년에 두 번도 전학을 다니곤 했는데 적응하기도 전에 이사를 가거나 적응할 무렵 떠나거나 했다. 15살,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전학을 더 이상 다니지 않았다.
아마도 공존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체득도 하지 못한채 행동 양식만 배우며 자라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그래서 그런지 도덕이나 윤리 교과서에 가르치는대로 살아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모범을 보이고 진실해야 하고 인내하고 등등. 어떤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황인지 없이 말이다.
그렇다 보니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소통하고 관계를 만들고 발전시켜 가는 과정에서 누가봐도 조금은 어색한 것이 있었으리라.
좋은 공존도 있지만 나쁜 관계도 있다.
잘못된 공존과 관계는 판단해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도시 사람들에게는 관계를 맺으면 맺을수록 외롭고 예의 바를수록 무시를 당하거나 모범을 보일수록 손해를 겪기도 하고 정직하면 정직할수록 슬픈 일들이 생긴다.
사회는 정글보다 복잡하고 미묘하다.
속구조와 겉구조가 전혀 다르기도 한 표리부동함이 있다. 도시의 어른들은 표리부동한 구조의 차이를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는 법을 잘 안다. 도시의 어른들은 공존이라는 단어 아래 다양한 이해 관계를 통해 자신들의 욕구를 해소한다.
도시는 발달하고 발전하고 성장한다.
도시가 도시스러워질수록 도시 사람들의 공존에는 독이 된다.
도시의 어른들은 관계를 위한 적당한 거리를 두라는 말을 한다. 도시에 진입하는 새내기 사람들의 두려움을 자극한다.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어서 좀 더 순진하고 순수한 공존, 관계를 잊을 수 있도록 한다.
순수하고 순진한 공존.
때로는 완전히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누군가를 위해 분노하고 슬퍼하기도 하는 것.
그래서 하나가 되어 보기도 하는 것.
그런 모습을 잃지 않도록 나의 원본을 기억해 낸다. 잊지 않도록 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시간이 그립다.
"공존의 이유"
- 조병화
깊이 사귀지 마세
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생애
가벼운 정도로
사귀세
악수가 서로 짐이 디면
작별을 하세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세
너만이라든지
우리만이라든지
이것은 비밀일세라든지
같은 말들은
하지 않기로 하세
내가 너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나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어디메쯤 간다는 것을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작별이 올 때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사귀세
작별을 하며
작별을 하며
사세
작별이 오면
일저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악수를 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