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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월 Aug 13. 2019

어른 너머에 부모가 있다

부모가 되어가는 모습에서 진정한 어른을 보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회생활의 햇수가 쌓이고 사회 경험이 많아졌지만 어른으로써의 한계를 느낄 때가 있다. 나는 스타트업을 지속적으로 경험해 오고 있다. 대기업 직장생활에서는 느끼지 못했었던 2% 부족한 어른의 상황을 스타트업에서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내 행동과 생각을 되돌아 보면서 내 이해의 폭이 상당히 좁구나. 글로 남겨 본다







어른이지만 2% 부족한 어른


나이가 들어가면서 반강제적으로 우리는 경험을 쌓는데 자연스럽게 경험주의자가 된다. 그리고 경험을 자신의 방어벽을 쌓는데 사용한다. 어른이 되면서 감정에 기댄 경험들은 주관적(?)으로 편파적으로 변한다. 

특히 자신을 어른이라 인지하면서 자신의 실수를 타인에게 감추거나 없애고 싶어한다. 완벽한 어른으로 보이고 싶은 욕심은 자신이 경험했던 것을 토대로 자신만의 틀을 만들어 원하는 결말을 내는 모습으로 보여지게 된다. 실수가 없어진 완벽한 어른으로서의 모습에 혹시 자신도 모르게 안도하지 않는가. 




완벽한 어른은 없다


실수들을 주관적 경험을 바탕으로 동일화 시킨 것인데 그런 프레임이 더욱 공고해질 때 스스로 어른이 되어 간다고 느끼기 쉽다. 실수가 없는 어른의 모습이 마치 삶의 정답인양 모든 의사 결정에 있어 사고방식이 굳어진다. 이런 고루한 방식의 의사 결정에 익숙함을 느끼고 이런 류의 익숙함에서 삶의 편안함을 느낀다. 익숙함과 편안함은 안정감을 준다. 삶이 안정되었다고 느낄 때 마침내 변화를 받아들이기 거부하게 된다. 더 이상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닫힌 생각과 마음의 문


문제에 직면했을 때에도 자신만의 방식대로 문제를 좁게 정의한다. 혹은 이전에 경험했던 문제와 유사점을 찾아 동일한 문제로 만들어 버린다. 창의성이라고 찾아볼 수 없다. 새로운 해결 방법에 대한 고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주변에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이들에게 관심이 없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조직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에게 반대한다. 안정감과 편안함을 파괴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고지식해지는 것이다. 이런 고지식이 꼰대의 대표적인 단어가 되는 이유이자 나이가 들면서 타인에 대해 이해를 넓히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2%를 채우는 어른


공고함을 깨어 가면서  2%의 어른은 서서히 채워지게 된다.

사회 생활에서 새로운 사람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가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서로 협혁하기 위해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는 기회를 통해 꼰대로부터 벗어나는 노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고루한 사고 방식을 깨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자. 



동생의 삶을 통한 배움


결혼과 아이를 통해 2%를채워갈 수 있다는 것을 엿보게 되었다. 

동생의 경혼과 출산 과정을 지켜 보면서 반강제적으로 어른으로써의 고집을 깰 수 있는 강력한 기회가 숨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결혼 이후 현실의 삶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과정이 거의 반강제적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것임을 보게 되었다. 부모와 달리 부부는 함께 2%의 어른이 되기 위해 서로가 채워주고 채워지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자녀가 생기게 되면 어른 너머 부모의 역할로 더욱 어려운 역할이 주어지게 된다. 

반강제적인 상황을 넘어서 일방적인 상황이 만들어진다. 부모는 자녀의 모든 것을 받아 들이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헌신한다.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수십 년을 받아들여 본 적은 그 누구도 없다. 부모를 제외하고.







노력에 기대어 본다


나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가 없다. 누군가의 이해의 폭이 좁았다. 지금도 좁아서 어떻게 하면 넓힐 수 있을까 고민을 한다. 내가 하는 모든 노력은 자의적인 의지이다. 주관적일 수 밖에 없고. 


결혼과 자녀를 통해 어른 너머의 역할이 주어진다. 

이를 통해 새로움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이렇게 어른은 어른을 넘어서 부모가 되어 간다. 우리에게 ‘아버지’, 혹은 ‘어머니’라는 단어는 늘 넘어설 수 없는 산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부모님은 우리보다 먼저 부모 됨을 경험했기 때문에.



부모님과 국립 현대 미술관 앞에서





어른을 넘어선다는 것은, 

어떠면 어머니가 혹은 아버지가 된다는 말일지 모르겠다.


스타트업을 하면 할수록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어른 너머의 무엇인가.. 있구나.

조금은 스타트업에 빗대어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요새 인재에 대한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지 이런저런 관찰 중에 발견한 어른과 부모에 대한 생각.

그들의 역할을 통한 삶의 성숙함에 더욱 관심을 가져본다.


[참고 글: 스타트업의 인재와 채용 http://bit.ly/2Z3hZf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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