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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월 Feb 09. 2020

'의'를 잃지 않기 위한 전제

‘의' 상하는 일 없는 게 쉽지 않은 세상

나는 삼 남매 중 둘째로 자랐다. 우리는 스스로 삼 형제라 생각하며 서로를 바라보며 살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이런 형제애 - 부족한 부분은 감싸고 삼 형제로써 자긍심 - 를 느꼈던 건 부모님의 세뇌교육 효과이다.


부모님은 첫째에겐 ‘모범’과 ‘공부’를 둘째인 나에게는 ‘의’를 동생에게는 ‘책임’과 예’를 강조하셨다. 새삼 이런 것이 기억이 난 것은 한 편의 탈무드 글 때문이다.






탈무드 글


의좋은 농부 형제가 있었다. 형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고, 동생은 아직 미혼인 상태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형제는 재산을 물려받았고 형제는 열심히 농사를 지어 사과와 옥수수를 수확하게 되었다. 형제는 그것을 공평하게 반으로 나누어 자기들의 창고에 넣고서 동생은 ‘형에게는 형수와 조카가 있어서 나보다 생활이 어려울 거야. 내 몫을 좀 가져다 드리자.’ 생각하고 밤에 몰래 형의 창고에 곡식을 가져다 놓았다. 형은 ‘나는 걱정이 없지만 동생은 아직 결혼도 안 했으니 돈이 필요할 것이다.’라며 밤중에 곡식을 동생의 창고에 옮겨다 놓았다.

다음 날 아침 형제는 자기 창고에 가 보고 전날과 똑같은 양의 곡식이 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어, 이상하다. 왜 내 곡식이 이렇게 많지?’ 다음 날 밤에 같은 일을 반복했다. 그러다 그들은 도중에서 마주치고 나서 형제는 그제야 곡식이 줄지 않은 까닭을 알게 되었다. 형제는 곡식을 내려놓고 서로 부둥켜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탈무드의 글을 보고 지금의 나는 어떤지 그리고 지금의 나를 만든 어릴 때를 떠올리게 되었다. 결국 '의'라는 것은 부모의 배경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탈무드에 등장하는 형제는 어렵지 않다.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은 것으로 이들은 의를 지킬 수 있고 아름다운 형제애를 보인다.


내가 어렸을 때라면 이 우화를 미화해서 가난해도 형제애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이 우화를 정확하게 읽고 있다. 아름다운 우화에는 전제가 있다는 것을. 어른이 되어서야 탈무드를 이해한다. 그리고 형제애와 '의'를 지키기 위해 전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삶의 동기가 조금은 더 깊어지는 겨울의 끝자락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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