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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월 Oct 11. 2019

소수자가 되는 일

다양성이 다양함이 존중받는 사회를 기다리며.

사회적 소수

기존에 사회적 소수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면 탄압 받는 소수 민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마도 오랜 시간에 걸쳐 신문 등을 통해 다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나서는 성소수자의 이미지가 연달아 떠오른다. 최근 몇 년 사이  그들의 인권과 권리 등에 대한 적극적인 그들의 사회적 움직임 때문에 미디어에 노출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는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자, 탈북자, 난민 등이 차례로 떠오른다. 모두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마이너 계층이다. 성소수자를 제외하고는 사회에서 소수의 존재, 특히 권리를 표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소수의 이미지와 나.

이런 이미지를 떠올리며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에 의해 '소수'화 됨을 느끼고 있다. 남들처럼 직장 생활을 하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소수 집단으로 분류되지 않은 채 창업하는 사람으로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 가끔 나의 주변의 시선은 나를 소수자로 분류한다는 것을 알아 차리게 되었다.



'소수'로 비치는 나.

내 나이대에 흔히 공감하는 삶의 상황들에 공감하지 못할 때가 있다. 소통하는 관점이 좀 다는 것도 있다. 그것을 그저 다른 삶을 선택한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형제 중에 그 흔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몇 년 간 보면서 '소수'의 시선을 알아차렸고 '소수'는 누구인가 궁금해졌다.



소수의 이야기.

'소수'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주변의 '소수'의 이야기가 들리고 보이게 되었다.

지인은 '난민' 보호 활동에 앞장 서고 있었다. 난민 보호 활동을 하는 이유는 자신의 동생의 아이와 난민의 가족 중 아이의 어떤 모습이 닮아서 유달리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지인을 통해 듣게 된 난민의 현실. 또 다른 지인들은 '외국인 노동자'로써 한국에 와서 겪는 다양한 상황들에 대해 직접 듣게 된다. 여기서는 인종에 대한 시선이 있었다. 비혼자들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에서는 그들 자신을 '소수'라 여기며, 사회의 불합리함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려 준다. 그 외에도 평소에 잘 보이지 않던 소외된 노인과 약자층, 장애인 등이 좀 더 잘 보이고 들리고 있다. 그 동안 내가 무심히 지나쳤던 사람들의 모습과 이야기였다.



복잡다단한 마음.

각 집단마다의 상황과 이유는 다르지만 그들이 경험할 수밖에 없는 사각지대가 있다. 그리고 그들이 받아야 하는 사회적 시선에 대한 씁쓸함은 모두의 공통분모이다. 특히 경제적 지위를 막론하고 사회적 시선은 모두가 받는다. 나 역시 ‘나이가 들었는데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 일반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여자'로서 받는 시선이 있다. 경제적, 사회적 위치를 내세우지 않으면 나는 사회적 약자나 주변인으로 내몰린다. 복잡한 심경이 된다.



아이러니하다.

사실 사회초년생 때 마이너 집단을 벗어나고자 그리고 사회적으로 스탠다드한 집단에 들어가고 싶어서 노렸하며 살아 왔는데, 그 결과는 아이러니하게 다시 소수의 그룹이라니. 표준화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소통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정체성에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사회가 이야기하는 표준적인 삶에서 내 삶은 거리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받아 들인다. 보통의 삶 혹은 표준화된 삶의 모습. '공부해서 대학을 진학해서 졸업 후에 직장 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하고 이런 집에 살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그래서였을까. 나는 이런 표준에서 벗어나 있었고 표준화된 삶의 길을 걷지 않은지 꽤 시간이 흘렀다.



나는 누구인가.

따뜻한 시선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나도 모르는 새에 표준화된 '성공'을 따라가다 길을 잃었다. 원래의 길을 찾아가는 중이지만 시간이 걸려도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사는 사람이고 싶다. 표준화된 '성공'을 쫓지 않고 이룩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싶다. 다르게 살다보면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양성이 사회를 좀 더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자의적으로 소수의 삶을 살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소수' 약자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소수'는 다양성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 역시, 소수자의 삶을 산다는 것을. 내 삶을 통해 이뤄질 일이 표준화 되지 않더라도 옳은 길이라면 멋진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어떤 삶도, 예쁘지 않고 행복하지 않은 삶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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