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옅어지는 것처럼 계절도 차분하게 옅어진다.
시간이 오래되면 기억도 계절도 모든 것이 조금은 바래진 색을 띠기 마련이다.
조금은 낡은 색안경을 낀 것처럼, 기억 속의 화면들은 한 톤이 옅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바래진다는 가사가 있다.
기억은 옅어지지만 흑백이 되지는 않는다. 시간의 낡음 때문이다. 낡아지지만 흑백은 아닌.
해다마 맞이하는 새로운 계절도 오래된 계절이 되는 때가 올까.
낡게 맞이한 계절은 더 옅게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옅어진 계절은 세월의 차분함을 선물로 준다.
옅은 미소로 창 밖을 보면서 차분해지는 가을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 나이.
어느덧 나는 네 번째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래된 가을
- 천양희
돌아오지 않기 위해 혼자
떠나 본 적이 있는가
새벽 강에 나가 홀로
울어 본 적이 있는가
늦은 것이 있다고
후회해 본 적이 있는가
한 잎 낙엽같이
버림받은 기분에 젖은 적이 있는가
바람 속에 오래
서 있어 본 적이 있는가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이 있는가
증오보다 사랑이
조금 더 아프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그런 날이 있는가
가을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것
보라, 추억을 통해 우리는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