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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월 Jan 04. 2020

연결은 존재를 말해준다

연결이 만들어 주는 인연과 사건에 의해 삶은 살아진다


사람의 관계는 가로로 연결되기도 하고 세로로 연결되기도 한다. 사람의 관계는 시간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사건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차원으로 비유를 들자면 연결은 3차원적이지만 그 결과는 4차원에 가깝지 않을까 상상한다.


마음이 시릴 정도 아프게 이별을 경험하고 나서 그냥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었다. 일부러 인연을 끊으려고도 했던 적이 있다. 그 이별은 이성과의 이별도 있지만 가족과의 이별도 있고 친구와의 이별도 있다. 그리고 동료와의 이별도 있다. 어떤 이별이 더 아프고 덜 아프고 순서를 정할 수 없다.


심하게 앓고 나서 한 동안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고 싶지 않아서 누구에게도 다가서지 않았던 적이 있다.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막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단절을 했던 적이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단절이 주는 것을 되돌아본 적이 있다. 일시적인 단절이 아닌 장기적인 단절은 나의 존재성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듯했다. 단절을 오래 둘 수가 없었다. 내가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었기 때문이다.


힘들게 세상에 손을 내밀고 사람들과 다시 연결되자 사라질 뻔한 나의 존재가 나타났다. 몇 번의 단절 경험을 통해 느낀 것은 연결은 존재를 말해 준다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교과서에 나온 그대로 배웠지만 몸소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러나 상처로 인해 관계를 끊는 행동인 단절을 함으로써 존재의 상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연결을 통해서 나의 존재도 알게 되었다. 연결에 따라 나의 색도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연결은 존재를 말해 주지만 연결의 결과가 외로움과 고독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연결이 이끌어 주는 결과는 인연과 사건이다. 살면서 많은 인연을 만나고 많은 사건을 거치게 된다. 지나치게 내버려 둬야 할 인연과 사건이 있는 반면 계속 지속되는 인연과 사건이 있다. 일찍부터 분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눈은 몇 번의 경엄을 통해 다듬어진다.


지속되는 인연과 사건. 잘 보이면 좋겠지만 보이지 않는다면 또 어떤가.

삶은 멀리서 보면 거기서 거기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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