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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월 Mar 28. 2020

이태원 클라쓰

종편 드라마 후기 - 1

쓰린 밤의 기억들


이태원 클라쓰 - 지인들한테 재미있다 권했지만 지인들은 '이태원 클라쓰'를 그저 드라마의 한 종류 혹은 박서준의 팬으로서 보는 드라마라고 여겼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태원 클라쓰를 그리도 열심히 시청했을까.


쓰린 밤 그리고 쓰린 날들. 우리에게는 매일은 아니어도 그것이 가끔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 고통은 무뎌지지 않고 적응해 가는 거라고 말했는데 어쩌면 그것이 삶에 적응하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서울의 쓰린 밤들을 조금은 단밤으로 만드는 이야기가 이태원 클라쓰였다. 그렇게 드라마 안에 들어가 있었던 이유는 나 역시도 단밤을 그리워하는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오기로운 삶은 눈물로 꽃을 피우고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호기롭게 소리치고 성큼성큼 거침이 없다. 그렇지 않은 주인공의 고등학교 시절의 호기로움은 주인공을 절벽 끝으로 밀어 넣게 된다. 아무것도 없는 삶에서 오기롭게 살아야 하는 주인공. 그런 주인공에게는 다행히도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는 아버지가 있었다. 맞지 않는 호기로움을 버리고 아버지가 남긴 오기로움. 주인공은 삶을 타협하지 않는 긍정적인 오기로움으로 살아간다.


반대로 부정적인 오기로움은 현실을 왜곡하고 삶을 꼬이게 한다. 호기로웠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갈수록 부정적인 오기로움만 남아 자신들의 현실을 왜곡해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주인공의 오기로움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겠지만 이태원의 새로이(주인공)은 마지막 한 번의 눈물을 보인다. 매일 밤의 눈물 대신 매일의 쓰린 밤 뒤에 숨겨진 눈물을 느끼게 했다. 그렇다. 현실에서 오기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많은 눈물이 뒤따르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헌신은 사랑이 되고


나 먼저 살고 사랑을 하려는 여자를 좋아했던 주인공. 주인공은 그 여자가 연약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슬픈 모습을 감춘 강한 생활력이 안쓰러웠을까. 버텨준 사랑이 올 때까지 양심의 가책으로 살아온 여자.

완벽하게 만들어진 자신의 세상에 혼자 사는 여자. 그 여자는 주인공에게 자신의 세상을 열어준다. 자신의 세계를 이해시키고 한편으로는 주인공의 세계로 들어간다. 주인공의 세상을 둘러보고 나서 어느 세계가 흡수되지 않게, 두 세계가 연결될 때까지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의 여자.


주인공은 자신의 세상을 내어주고 주인공의 세계를 가져간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그 과정이 무척 모질고 아프게 보였다. 그러나 사랑의 정직한 결과에 기뻐할 수 있었다. 자신의 세계를 버려야만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는데 자신과 사랑을 모두 지킨다는 것이 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희망은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기쁨을 준다.


 



제한적으로 연결된 세계는 풍요롭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으면 인간의 센싱에 과부하가 걸린다. 때문에 제한적으로 연결된 세상이 가장 풍요롭다.

세상은 연결되어 있어야 하지만 단절되어 있어야 하기도 하다. 세상은 많은 소리가 있지만 조용한 곳도 필요하다. 풍요는 제한이 있어야 느낄 수 있다. 쓴 맛이 있어야 단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쓰린 밤이 있어야 단밤이 있다.



https://youtu.be/VcWPHoHb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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