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리트리버 입양기
개 한 마리 키우실래요?
이태원 초입에는 매주 일요일 유기견 봉사자들이 입양자를 기다리는 유기 동물을 데리고 나오는 장소가 있다. 가끔 지나다니면서 유심히 보기도 하고 유기견 카페에도 종종 들리면서 언젠가 시간이 나면 입양을 해야지 마음만 수백 번 먹기를 약 2년.
일주일 전 즈음 지인의 문자를 받았다. 눈으로만 마음먹고 결심해 보던 유기견 입양을 운명이라 여기며 고민 없이 덜커덕 수락했다. 유기센터에서 입양하던 것을 생각해왔던 터라 일반적인 유기 동물이 거치는 절차를 거치고 싶었다. 집에서 혼자 키워보는 것도 처음이었기도 해서. 시골에 방치된 개를 구조했다던 구조자 분은 입양 센터를 거치기보다 직접 입양해서 바로 키워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강아지 혹은 개
중 2 때 강남에서 강원도로 이사해서 살았던 적이 있다. 학업 스트레스를 많았던 터라 큰 환경의 변화는 좋았다. 강원도의 집은 너른 앞-뒤 마당에 계곡까지 끼고 있었다. 마당에는 큰 개 2 마리와 중간 크기의 1 마리가 있었다. 그때 나에게 개들은 우리 집을 지켜주는 용맹한 지키미이자 나와 동네를 함께 달리는 친구들이었다.
지인이 보내준 사진에 누런 털이 북실대는 개가 있었다. 어릴 때 우리 집에서 키웠던 순박한 누렁이가 생각났다. 이 아이는 뭐라고 부를까.
‘솜이야.’
솜이는 구조된 다음 날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구조한 분이 솜이를 빨리 데려갔으면 하셔서 약간 성급하게 진행이 되었다. 금요일 퇴근 후 저녁 9시가 조금 넘어 도착한 솜이. 문을 열었을 때 송아지(?) 같은 큰 강아지가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솜이를 처음 본 그 짧은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도시에서 반려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었고 혼자 감당해서 키워본 경험이 없었다. 구조된 솜이는 계단을 오르고 내려가 본 적도 없고 엘리베이터나 차를 타 본 경험도 없고, 횡단보도를 건너 본 경험도 없고 사람이 많은 거리를 걸어 본 적도 없었다.
솜이는 머리와 귀 주변 약간의 상처와 피부 가려움, 귀 안의 약간의 염증, 심장 사상충에 걸려 있는 상태였다. 입양을 하면서 동시에 치료가 필요하고 도시의 시설과 환경에 적응시키고 필요한 훈련도 해야 했다. 동물이지만 긴장한 눈빛을 알아볼 수 있었다.
4시간을 차를 타고 오느라 쉬야 혹은 응가를 해야 할 거 같아서 구조한 분과 함께 10시 즈음에 산책을 해 봈다. 엘리베이터를 무서워했다. 자동문을 무서워했다. 밖에 나가서도 긴장했는지 그냥 돌아왔다. 구조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안쓰러운 마음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내가 무엇부터 먼저 해야 하는지부터 필요한 것들이 뭔지 생각했다. 무경험자의 미숙함으로 솜이 방에 사료와 물을 넣어 주고 불을 껐다. 밤 12시가 넘었다.
걱정이 가득한 채 잠을 청해 보려 누웠지만 옆방에서 낑낑대는 소리와 안절부절 방을 걷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지속되자 새벽 한 시에 솜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제야 쉬야를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계속되는 안절부절 낑낑대는 소리와 뭔지 모를 소리에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토요일 아침이 되었다.
혹시 몰라 6시에 맞춰 놓은 알람에 깨자마자 반사적으로 산책을 나갔다. 사람이 없는 거리에 쉬야와 응가를 하고 들어 왔다. 사료를 주고 물을 주고, 약을 먹이고 아침을 부지런하게 보내고 잠이 들었다. 다시 일어 나서 산책을 다시 나갔다. 배변 패턴을 모르기도 하고 산책이 기분을 좋게 한다는 이야기는 어디선가 들었다.
산책을 시키고 들어 오자마자 나는 혼자 마트를 갔다. 배변 패드와 기타 필요한 몇 가지를 사야 했다. 마루 바닥이 미끄러워 급한 대로 캠핑 매트도 구매했다. 방을 좀 더 그럴듯하게 세팅을 하고 상처에 약을 바르고 저녁 사료와 약을 먹이고, 간식과 덴탈 껌을 주었다. 집안의 여기저기 이것저것 냄새도 맡게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1박 2일을 보냈다. 생전 처음 겪어 보는 반려동물 입양, 좌충우돌의 시간이 시작된 것을 직감했다.
[100일이 된 솜이: https://bit.ly/3ggVUiZ - 잘 먹고 잘 적응하고 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