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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월 Jun 28. 2020

엄마의 커피

호로록 호로록 엄마의 시간을 마신다

오뎅 국물 같은 커피


가끔 엄마한테 핸드 드립 커피를 해드린다. 커피를 내려 드리고 나는 밖을 나가는 경우가 많아 정작 엄마가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언젠가 짐에서 엄마가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오뎅국물처럼 호호 불어가며 후다닥 마시고 있는 엄마를 보고 잔소리를 했다.

'엄마, 커피 후르륵 마시는 거 아니야~ 밖에 가서 아메리카노 그렇게 마시지 말어'

엄마는 무안했는지 머그컵 위 가장자리를 손으로 닦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때는 엄마가 아메리카노를 왜 그렇게 급하게 호호 불어가며 넘기는지를 몰랐다.




커피의 세계


90년대 중반 즈음 아메리카노보다 헤이즐넛 커피향에 익숙했던 때가 있었다. 스타벅스라는 미국적인 낯설음 때문이었는지 약간의 눈치를 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헤이즐넛의 달달한 향을 맡으면서도 아메리카노의 씁쓸한 맛에 길들여져야 할 것 같았다. 아메리카노 맛에 금방 익숙해졌고 헤이즐넛향 커피는 촌스러워졌다. 


한참의 사회 생활을 거치면서 취미를 찾기 시작할 시간이 생길 무렵 커피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핸드 드립 커피의 무엇인가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가보지도 않은 나라들을 상상할 수 있었고 현실에 없는 낭망과 여유를 만끽했다. 커피 한잔은 나에게 허락된 작은 사치 같았다. 수입된 원두들을 조금씩 사보고 맛보길 여러번. 커피 원산지의 특징이나 로스팅과 블렌딩 등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커피 자체의 매력에 빠져 들었던 것 같다.




커피의 전파


엄마와 함께 주말을 맛집 투어를 하면서 ‘아메리카노 + 케익’의 조합을 시작해 드렸다. 내가 느낀 작은 행복을 전해주고 싶었다. 아메리카노의 씁쓸했던 첫 느낌을 전하며 엄마의 고달픔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랬다.


엄마의 젊은 시절(나의 어린 시절) 때에는 손님을 위해 찬장 깊숙한 자리를 차지했던 앤틱 커피잔 그리고 커피, 설탕, 프림 통이 세트로 된 커피 다기를 내오셨다. 수년이 지나 엄마는 앤틱 찻잔 세트를 영원히 사용하지 않을 것 같다며 가끔 어루만지시곤 했는데 그 찻잔 세트를 물려 주셨다.


처음 엄마는 아메리카노 맛을 모르겠다고 하셨지만 나는 계속 엄마에게 아메리카노와 드립 커피를 권했고 함께 마셨다. 엄마는 내 생각을 아셨기 때문에 모르는 맛이지만 드셨던 것 같다. 그 동안 집에는 머그잔들이 채워졌고 커피 원두 종류가 늘어 갔다.




엄마의 커피


어느 날 바리스타 교육을 신청하셨다며 커피 공부를 시작하셨고 그 후에 커피의 세계에 더욱 빠지셨다. 복잡하고 귀찮을 것 같지만 막상 빠져 들면 핸드 드립의 과정이나 원두 등 커피 애호가들을 사로잡는 무엇인가가 있다.


엄마는 커피 원두를 직접 갈아서 물을 끓이고 필터에 한 방울씩 내려 마시는 핸드 드립의 매력과 커피 원두의 향에 빠져 들었다. 과정이 주는 마음의 여유를 알게 되셨지만 가끔 커피를 오뎅 국물 마시듯 호호 죽죽 마실 때 나는 한 마디씩 했다. '엄마 커피는 그런 게 아냐~'


엄마가 집에 오셨고 며칠 머무르는 일이 있었다. 엄마가 일어나기 전 아침 일찍 나는 엄마를 챙기고 싶었다. 조용히 부엌에 나와 준비하다가 나도 모르게 커피를 후르륵 마시다 알았다. 엄마의 커피는 자식들을 모두 챙겨 주시고 난 이후의 여유였다.




엄마의 시간을 마시다


내 나이가 많아지고 내 부모도 늙으면서 부모가 자식을 챙기는 지점과 자식이 부모를 챙기는 지점이 같아진다. 그리고 그 후로는 자식이 부모를 챙기는 때가 더욱 많아지게 된다. 엄마의 나이를 볼 때마다 챙기는 마음이 커진다. 커피와 함께 엄마의 시간을 마신다.


엄마와의 커피 타임은 언젠가 추억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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