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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월 Sep 08. 2020

도시와 골목

오래되고 구불거리는 골목길에 대한 향수

도시, 욕망의 블랙홀


인간의 욕망을으로 자라는 것이 도시라는 어느 애니메이션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인상적인 내래이션이었다.


도시는 블랙홀 같은 면이 있다. 블랙홀은 죽은 별이다. 죽은 별은 검은 용광로가 되어 주변을 빨아들인다. 죽음이 죽음을 부른다. 도시에는 이면이 존재한다. 화려함 뒤의 어두움, 혁신 뒤의 계층 이동 등 말이다. 어두운 도시가 아름답지만 불을 밝혀 보면 슬픈 이유가 이런 이면성 때문이다.




도시, 답답한 정체


강남의 높은 빌딩 숲에서 근무할 때가 있었다. 랜드마크 빌딩의 마천루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은 좋았지만 언제부턴지 빌딩 안이 답답해졌다.


빌딩 숲. 개발도상국에서 빌딩 숲은 발전을 의미하는 희망적인 단어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빌딩과 숲이라는 단어 조합은 함께 쓰기에는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시대이다. 그런 아이러니함을 답답하게 여겼는지도 모른다.


직장에 매여서 벗어나지 못했던 빌딩 숲 혹은 유리 감옥 같은 곳을 벗어날 수 있게 된 건 창업을 하면서부터이다.


숨 막히게 빽빽하고 줄지어 선 고층의 빌딩이 아니어도 숨 쉴 수 있는 곳이 있다. 도시 안쪽, 도시의 속살인 골목이다. 골목은 보도블록이 편평하지 않다. 잡초도 여기저기 보이기도 한다. 길냥이들이 가끔 지나가기도 한다. 막다르기도 한다. 골목에 갈 때는 세련된 구두를 신지 않는다. 낡은 보도 블록 사이에 구두 굽이 빠지거나 앞코가 부딪힐 수 있다. 구두가 아닌 운동화 또는 단화를 신고 걷는다. 주변의 속도와 상관 없이 걸을 수 있는 곳이 골목이다.




골목이 주는 위로


골목은 빌딩 숲에 비해 불편함과 부족한 것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덜 답답하고 덜 경쟁적이고 덜 치열하다. 큰 빌딩 앞 큰 길과 대로변의 차들을 보자면 없던 경쟁심이 일어나고 자신을 낮춰 비교한다. 그럴 때면 길을 바꿔야 한다. 바꿔 걸어야 한다. 눈 앞이 캄캄하고 주변 환경 때문에 앞을 제대로 보기 어려울 때 골목을 걸어 본다. 막막하고 생각이 없을 때 골목을 걸어 본다. 그렇게 걷다 보면 길의 끝이 나온다. 그렇게 끝이 보이면 마음의 안도와 생각의 결론과 편안한 들숨을 찾게 된다.



낡음이 주는 위안


골목의 낡음이 있다. 길과 담장과 담장 너머의 집들. 그리고 그 길을 지나갔던 사람들이다. 차 소리 대신 발자욱 소리가 들리고 길냥이가 쓰레기를 뒤 엎는 소리가 들리고 담장 너머의 여러 소리가 있다. 세련된 것도 아니고 행복해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낡은 느낌을 느낄 뿐이다. 그러나 그 낡음에서 숨가쁜 박동수가 점차 정상 박동수로 돌아옴을 느낄 수 있다. 위안을 받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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