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기가 보낸 새벽의 위로

4. 다시본 일기

by 오후의 산책



”일기는 일시정지, 괄호, 멈춤이다. 한페이지에 던져진 몇 개의 단어로 자기자신을 고립하는 것은 나날을 쓸어버리는 망각에 저항해 그것을 기록하면서 싸우는 것이다“ (소피 퓌자스)

그날 새벽.
엄마의 간병으로 마음이 더 추웠던 겨울 어느날이다.
팔순의 엄마가 말기암 판정을 받으면서 영원한 이별이 다가오고, 햇수를 거듭하는 간병에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갔다.
불면의 밤이다. 왕복 세시간넘는 친정집에 다녀오는날엔, 고단한데도 여러 걱정과 상념으로 자다깨기가 일쑤. 새벽에 눈이 떠졌는데, 잠이 안왔다.


마음이 지쳤지만, 위로는 멀어보였다.
그때, 뜻밖에도 일기장이 생각났다.
노트북에 저장된 지난 일기들을 조용히 열었다. 아이의 사춘기와 입시, 나의 갱년기 , 엄마의 암판정, 이어진 간병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담긴 일기장이었다. 30년 가까이 적은 꽤 많은 분량이다.
지나간 시간 들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몇페이지나 읽었을까.
어슴푸레한 새벽에 잔잔한 희열이 번졌다.
두가지가 또렸해졌다.
그당시에 힘들게 느껴졌던 일과 감정들이 다시 보니 ‘별거 아니었구나, 그냥 지나가는 감정이었구나’, 싶은 마음이 하나였다. 또, ‘이런 힘든 일들을 잘 이겨냈구나’ 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대견한 마음이었다.

그 새벽, 오래된 일기장이 건넨건 속깊은 위로였다. 또,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보내는 , 말없는 지지였다. 다시 편하게 잠자리에 들었고, 간병의 힘듦이 한층 가벼웠졌다.

그날이 인상적이었지만, 처음은 아니었다.
아이를 낳고 패혈증과 우울증에 걸려서 힘들어하던때 써두었던 일기를 훗날에 열어본적이 있었다.
그때 조금 놀랐다.
'내가 이런 일로 이렇게까지 힘들어했는가' 싶은 마음이었다.
그 감정들이 틀렸거나 잘못된 것은 분명히 아니지만, 다시 들여다보니, 객관적인 입장에서 나를 볼수있었다.

“기억은 미래를 위한 것이다. 과거를 붙잡기 위한게 아니고” (이인아교수)
내가 지난 시간들을 일기로 기록해놓은 것은 과거를 붙잡기 위한게 아니었다. 내 지나간 시간들을 기록하고 기억한건, 내 미래를 위한것이었다는걸, 지난 일기를 다시보면서 깨달았다.

또, 다시 보면 치유가 된다는것도 그 때 알았다.
이런 이유로, 일기장을 자주 들춰본다.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할 때, 나는 조용히 지난 일기장을 펴든다.
'이런 일들로, 내가 고민했구나' ' 이런게 즐거웠구나',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다보면, 내가 나무를 닮은 사람인지, 바다를 닮은 사람인지 알게 되고, 나의 고민들이 몇 그램 더 가벼워진다.
불안했던 마음은 가라앉고, 내앞에 닥친 고민은 더 작아진다. 지금 이순간이 당연하지않고,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또, 나에 대한 믿음은 더 커지고,닥친일들이 다룰만한 크기로 작아진다.
지난 일기를 다시 보는게, 감정의 치유에 큰 도움이 된다는걸, 오래 일기를 쓰면서 깨달았다.

*당신도 오래된 일기가 있다면, 지금 꺼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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