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라는 자기돌봄.... 3. 관찰자 시점.
"우리는 온전히 나자신을 받아들이기전까지는 변할수없고 , 나자신으로부터 도망칠수도없습니다.
변화는 억지로 만들려고 할때가아니라, 내가 미처 모르는 사이 조용히 옵니다. " ( 칼로저스)
일기장속의 나와 대화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지나가버린 어제도, 오지않은 내일도아닌, 오늘 하루만 잘 살아내면 된다는 마음으로 지내고 그날 그날 일상을 적어나갔다.
체력이 다돌아오지 않았지만 회사에 복귀했고, 친정엄마와 남편의 도움을 받으면서 아이를 키웠다.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아이와 놀아주면서 내가 돌볼수있는 일들을 점점 더 늘려갔다.
영하의 기온속에 그해의 달력도 한 장만 남았고,
따듯한 난로가 간절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일기의 관점을 바꾸고 싶었다.
나름대로 버티고 애쓰고있는 나를 누군가 바라봐준다면, 어떤 느낌일까.
시선하나를 만들었다.
3인칭으로 일기를 써보자. ‘그녀’의 하루와 ‘그녀’의 마음을 따라가면서 바라보는 일기를 기록했다. 덜 돌아온 체력으로 이른 시간에 출근 준비를 하고,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하고, 틈틈이 회복을 위한 운동을 하는 그녀, 퇴근한 후에도 아기를 돌보는 그녀를 담담히 일기에 적어나갔다.
촉촉하고 보드라운 무언가 서서히 번지고 스며들었다.
연민이었다.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시선을 바꾸고 문장이 바뀌자 감정이 몰려왔다.
변화는 그이후부터였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듯했다. 그렇게 서서히 아이한테도 회사일에도 더 집중할수있었다.
아이가 아주 어릴적에 씌여진 그날의 일기를 지금도 가끔 다시본다. 이런 시간을 지나서 지금의 나에 이르렀구나. 나를 다시 숨쉬게한 그 일기에 오롯이 담긴 마음을 더 들여다본건 그 후로도 많은 시간이 흐른뒤였다.
'옳다, 그르다'' 좋다 , 나쁘다 '' 이래야한다, 저래야한다" 판단하거나 충고하지않는 눈길. 또, 나를 있는그대로 수용하고, 존중하고, 사랑해주는 눈길. 그때 그 눈길이 가장 간절했구나.
3인칭은 관찰자의 시점이다. 나와 내 앞의 일들에 거리를 두고 보는 눈이다. 한발짝 떨어지면 좀 더 객관적으로 볼수있다. 내 내면의 감정에 갇히지않으면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 , 새롭게 해석할 여지를 준다. 이 눈은 우리가 앞에 놓인 문제들을 잘 해결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삶은 감정과 상황 관계가 뒤얽힌 꽤나 복잡한 고차 방정식이다. 나이가 들고보니, 이 방정식을 풀기위해서 꼭 필요한게 이 관찰자의 시점이었다.
살아가는 일은 때때로 버겁다.
대부분의 삶은 내앞에 닥친일을 처리하느라 허덕대기 쉽다.
존재자체로 존중받고 사랑받는일은 어릴적 부모품안에 잠시 머무를때 정도다.
그 이후엔 눈앞의 의무와 숙제가 끝없이 기다릴뿐이다.
공부를 하고 입시라는 관문을 지나는 어린 시절이 지나면, 밥벌이의 괴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이후에도 결혼과 육아까지, 녹록한일은 없어보인다. 온전한 책임감과 부담감에 짓눌리기 십상이다. 아이가 대학을 가고나면 나의 숙제가 끝나는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나의 경우, 연로하신 부모님의 간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숨가쁘게 달려온 인생의 시간
속에서 나름대로 길을 잃지않을수있었던건, 30년간 쓴 일기덕분이다.
*당신도 오늘을 3인칭 일기를 한번 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