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 생각하자 불안이 사라지고

2. 하루, 딱 하루만 살기

by 오후의 산책


“일기 속의 나는 세상의 나보다 더 진실하다”(프란츠 카프카)


인생은 짐작과는 달랐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을 때. 6월 출산을 앞둔 나는, 회사에서 월드컵관련 야근까지 연달아 해야했다. 여름 출산은 산후조리도 몇배 더 힘든데, 만삭의 몸으로 밤늦게까지 일한게 무리였을까.

사달이 났다.

한여름이라 산후 회복이 더 더딘건지, 체력이 쉬이 돌아오지않았다. 조바심이 난 상태에서 불면증이 생기고 체력은 자꾸 떨어지기만 했다. 급기야 온몸에 세균이 감염되는 패혈증으로 생명까지 위험해지고, 산후 우울증 이 왔다. 긴급하게 다시 입원을 했고, 기나긴 여름 장마처럼 지루하고 지치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주어진 출산휴가를 다 쓰고도 회사 복귀를 더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갓난 아이를 키우는 일은 건강한 사람도 힘든일인데, 이런 몸으로 어떻게 육아를 하고, 야근까지 주기적으로 하는 회사에 복귀 할수있을까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당연해보이던 일상들이 내게서 등을 돌리고, 내앞에 열린문들이 하나씩 닫히는 기분이었다. 나를 비추던 밝은 전등이 하나씩 꺼지는 순간이 이런거구나, 느꼈다.


“하루, 딱 하루.”

그때, 딱 하루만 생각하기로 했다. 불안한 마음에 과거와 미래를 떠도는 마음을 ‘지금, 여기’로 데려와야했다.

“오늘 하루, 안아프고 별일없이 잘 지내면 돼”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마음이 편해졌다.

하루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쓸데없는 걱정과 우울이 덜 해졌고, 지난일을 후회할 필요도, 오지않은 미래를 걱정할 이유도 사라졌다. 내옆에 누운 아이의 여리디 여린 손가락을 조물락거릴수있고, 그 뺨을 어루만지고 보드라운 촉감을 느끼자 먼 훗날을 고민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때,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장 이름을 ‘하루’로 정했다. ‘하루’ 에 딱 하루치의 인생을 적어나갔다. 일기쓰기는, 쉽게 달아나려는 마음을 붙잡아두는 , 내가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힘들면 힘든대로, 좋은건 좋은대로, 감정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고 나면 마음이 편해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아닌게 될수도 있는 나를 , 순하고 고요한 눈빛으로 바라봐주었다. 아프고 무력해져서 힘든 마음을 수용해주면서 그 터널같은 시간들을 지나왔다.


하루, 하루, 또하루.

계절이 겨울로 바뀌고, 별일없는 하루들이 눈송이처럼 쌓여가고, 상처난 내 마음에도 새살이 돋아났다. 자신감도 조금씩 돌아오고, 몸도 차츰차츰 나아졌다. 우울감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고 느낀것도 그때부터였다. 아이도 날마다 자라고, 나는 회사에 무사히 복귀를 했다.


그 이후론 일기를 꾸준히 썼다.

기분이 좋을때도 썼고, 마음이 힘들때도 썼다. 삶의 소중한 한 조각들을 기록하기 위해서 일기장을 폈고, 힘든 마음을 나에게서라도 공감받고 위로받기 위해서 ,오늘 하루를, 내 감정을 노트북위에 옮겼다.


써나가면서 았다.

나의 목소리에 온전히 귀기울여준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내 마음의 소리보다는, 주변의 기대나 사회적 강요, 현실의 자질구레하고 또 시급한 문제들에 이끌려 살았고, 그런 부분이 내안에 쌓여있었다는걸.


“앞이 캄캄합니다. 선배님들은 힘든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복잡하고 소란스런 시대. 인터넷 커뮤니티같은 익명의 공간에 이런 질문이 많이 올라온다.

모두가 힘든 시대에 마땅한 조언도 구하기 힘든 사람들이 올리는 긴급한 sos 다.

‘운동을 해라’, ‘맛있는걸 먹어라’, 여러 가지 충고들이 올라온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싶다.

“딱 오늘 하루만 보고 사세요. 그리고 일기를 쓰세요.”

오늘 하루만 사는 일은, 25년이 지난 지금에도 필요한일이다.

어느 위대한 종교나 철학도 지나간 과거의 후회나, 오지않은 미래의 불안을 붙잡고 살라고 하지않는다.

'지금 이순간'으로 내 마음을 데려오는 일이 , 나에겐 일기쓰기다.

지금 ,여기를 살면, 마음이 정리된다. 마음이 정리되면, 눈앞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좀더 쉽게 보이고, 그때부터는 내가 할수있는일들을 정해서 하나씩 해나가면 된다. 내일이 오는게 두려운 이들에게, 또 현재에 집중하고싶은 이들에게 일기쓰기를 권하는 이유다.


' 지금, 여기'를 사는건 언제나 옳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결국 나에게 필요한건 ‘오늘’이었다. 젊음은 이미 지나갔고, 과거의 후회나 다가올 노년의 두려움에 현재를 낭비할순없다. 진정으로 내가 살아야할 것은 지금, 이순간이다. 삶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하루, 지금 이순간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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