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 집중하자 불안이 가라앉고

일기라는 자기돌봄...2. 내 일기장은 '하루'

by 오후의 산책

2.

인생은 짐작과는 달랐습니다.

2002년 전세계인의 축구 축제인 월드컵의 열기가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을 때였습니다.광화문에 있던 직장에는 광장의 함성이 들렸고 인파는 거리를 뒤덮었습니다. 저는 결혼 몇 년만에 기다리던 아이를 갖게되었고, 6월 출산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다니던 회사에서는 월드컵 관련 야근이 몇 달째 계속 이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살림을 하며 회사를 다녀야했고 야근까지 하면서도 분만 이후를 위한 준비도 틈틈이 해두어야했습니다.산모에 대한 보호와 인식도 지금보다 열악할때였습니다. 임신도 출산도 처음이다보니, 준비할게 많았습니다. 아이를 먹일 젖병이나 소독용품 기저귀 씻길 욕조와 배냇저고리와 내복 속옷 포대기등 나름대로 준비할게 많았지요. 직장을 다니면서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조금씩 마련해나갔습니다. 바쁜 직장을 다니는 초보 예비 엄마에게 시간은 없고 할일은 언제나 넘쳤습니다. 차분히, 아이를 기다리는 기쁨만을 만끽할 시간적 여유도 별로 없었습니다.

여름 출산은 예전부터 악명높습니다. 날씨는 덥고 습도는 높아서 산모가 산후조리를 하기에 안좋기 때문입니다. 산모는 전통 온돌같은 따듯한 방은 못되더라도 찬바람 쐬지않고 몸을 조리해야하는데, 그러기에 여름은 최악입니다.

월드컵의 열기가 무르익을때였습니다. 잦은 야근을 하는 와중에 조금씩 산통이 느껴졌고 급기야 회사에 출산이 임박함을 알리고 휴가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이라 겁이나기도 했지만, 사달이 날줄은 몰랐습니다.

산후조리도 힘든데 만삭의 몸으로 밤늦게까지 일한게 무리였을까요. 아이를 오랜 진통끝에 낳고 회복을 하는데 몸이 좀처럼 돌아오지않았습니다. 한여름이라 산후 회복이 더 더딘 건지, 체력이 저질체력이어서인지 알수없었습니다. 아마 둘다 였겠지요. 저질체력인데 월드컵기간 야근까지하면서 무리한때문이었겠지요.

비슷한 시기에 회사에서는 여러명이 산후휴가에 들어갔습니다. 출산을 하러 회사를 떠났던 동료들이 속속 돌아오면서, 나도 빨리 체력이 좋아져서 복귀해야한다는 조바심이 났나봅니다. 안그래도 지내기 힘든 계절인데 말입니다.

습하고 더운 여름이라 신경이 예민해지면서 불면증이 오고 건강은 자꾸 나빠지기만 했습니다. 이런걸 설상가상이라고 하나요. 급기야 온몸에 세균이 감염되는 패혈증이 생겼고, 생명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 산후 우울증 이 왔습니다. 긴급하게 다시 입원을 했습니다. 기나긴 그해 여름의 장마처럼 지루하고 지치는 시간들이 이어졌습니다. 정부시책대로 2개월이었던 산후휴가가 3개월로 늘어난 혜택을 처음 누리는 직원이었지만, 휴가기간이 끝나가는데도, 몸이 엉망이었습니다. 회사에 요청을 해서 사용하지않은 연월차까지 모두 소진했습니다.

처음 만난 아이와 행복한 시간만을 보내고 회사에 복귀하려던 달콤한 꿈은 어그러지기만했습니다. 갓난아이를 키우는 일은 건강한 사람도 힘든 일인데 이런 몸으로 어떻게 육아를 하고 야근까지 주기적으로 하는 회사에 복귀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회사복귀는 커녕 자칫하면 직장을 그만두어야할수도 있다는 위기감까지 들었습니다. 당시 업계에서 ‘고시’라는 별칭이 붙은 입사시험에 몇백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갔던 회사를 계속 다닐수있을까, 한여름에도 패딩을 입어야할정도로 몸이 안좋은데, 어린 아기를 혼자서 잘 돌볼수있을까, 고민들이 많아지고 마음은 불안해졌습니다. 당연해보이던 일상들이 내게서 등을 돌리고, 내앞에 열린문들이 하나씩 닫히는 기분이들었습니다. 나를 비추던 밝은 조명들이 하나씩 꺼지는 순간이 이런거구나, 느꼈습니다.


“하루, 딱 하루.”

그때, 딱 하루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곳이 없었습니다. 과거와 미래를 떠도는 불안한 마음을 ‘지금, 여기’로 데려와야했습니다.

“오늘 하루, 안아프고 별일없이 잘 지내면 돼”

이렇게 마음먹기로 했습니다.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하루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쓸데없는 걱정과 우울이 확실히 덜 해졌고, 지난일을 후회할 필요도 오지않은 미래를 걱정할 이유도 사라졌습니다. 내옆에 누운 아이의 여리디 여린 손가락을 천천히 조물락거리고, 그 뺨을 어루만지며 보드라운 촉감을 느끼자 오지않은 먼 훗날을 고민하며 불안해 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미래를 향한 불안은, 현재에 머물지못한 마음의 결과다"라고 말한 알랭드보통은 옳았습니다. 내앞의 '지금, 여기'에 집중하면서 , 뒤숭숭한 마음이 사그러들었습니다.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전에 간간히 쓰던 일기를 본격적으로 쓰기시작했습니다.

일기장 이름을 ‘하루’로 정했습니다. ‘하루’에 딱 하루치의 인생을 적어나갔습니다. 내 하루가 내 인생의 축소판이고, 중요한 단면이니까요, 쉽게 달아나려는 마음을 붙잡아두는 , 내가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이 일기쓰기였습니다. 힘들면 힘든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감정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조금 마음이 답답하거나 우울해져도, " 일기를 쓰면 괜찮아질거야" 라고 생각했고, 일기라는 '믿는 구석'이 생기자 불안하던 마음이 서서히 옅어지기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아닌 게 될 수도 있는 나를 , 그냥 순하고 고요한 눈빛으로 바라봐주었습니다. 일기장에 한자한자 써내려가면서 아프고 무력해진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고나니, 더 이상 두렵지않았습니다. 그렇게, 아이를 낳던 그해 여름의 그 길고도 어두운 터널 같은 시간들을 지나왔습니다.

하루, 하루, 또 하루.

계절이 겨울로 바뀌었습니다. 별일 없는 하루들이 눈송이처럼 쌓여가고, 상처 난 내 마음에도 새살이 돋아났습니다. 자신감도 조금씩 돌아오는게 느껴졌고, 몸도 차츰 차츰 나아졌습니다. 우울감이 별로 없다고 느낀것도 그때부터였습니다. 잃어버린 입맛이 돌아왔고, 의욕도 조금씩 생겨났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도 날마다 자라고, 회사에 무사히 복귀할수있었습니다.

그 이후론 일기를 꾸준히 썼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도 썼고, 마음이 힘들 때도 썼습니다. 삶의 소중한 한 조각들을 기록하기 위해서 일기장을 폈고, 힘든 마음을 나에게서라도 공감받기 위해서 , 오늘 하루를, 내 감정을 노트북위에 옮겼습니다.


일기를 써나가면서 깨달았습니다. 내 내면의 목소리에 온전히 귀 기울여준적이 없었다는 것을. 내 안에서 나오는 목소리보다는, 주변의 기대나 , 사회적 강요, 현실의 시급하고 자질구레한 문제들에 이끌려 살았고, 그런 부분이 오래도록 쌓여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앞이 캄캄합니다. 선배님들은 힘든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시대,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익명의 공간에 이런 질문들이 올라옵니다. 모두가 힘든 시대에 마땅한 조언도 구하기 힘든 사람들의 긴급한 sos 라고 생각합니다..

‘운동을 해라’, ‘맛있는 걸 먹어라’, 여러 가지 충고가 많이 나옵니다.

난,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딱 오늘 하루만 보고 사세요. 그리고 일기를 쓰세요.”


현재(present)는 선물(present)입니다. 모든 후회와 불안을 없애주는 ,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값비싼 선물이 지금, 이순간입니다. 오늘 하루만 사는 일은, 25년이 지난 지금에도 필요한 일입니다. 어느 위대한 종교나 철학도 지나간 과거의 후회나, 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을 붙잡고 살라고 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으로 마음을 데려오는 일이 , 나에겐 일기 쓰기입니다. 지금 여기를 살면 감정이 정리됩니다. 감정이 정리되면, 눈앞의 문제들이 더 잘보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면 됩니다. 내일이 오는 게 두려운 이들에게, 또 현재에 집중하고 싶은 이들에게 일기 쓰기를 권하는 이유입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나에게 필요한 건 언제나 '오늘' ‘하루’ '지금, 여기'입니다. 찬란하고 눈부시던 젊음은 이미 지나갔고, 과거의 후회나 오지않은 노년의 두려움과 불안에 소중한 현재를 낭비할 순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것은 이 순간입니다. 삶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현재이고, 그 현재를 가장 잘사는 방법이 저에게는 일기쓰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