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라는 자기돌봄...3. 관찰자 시점
"우리는 온전히 나자신을 받아들이기전까지는 변할수없고 , 나자신으로부터 도망칠수도없습니다.
변화는 억지로 만들려고 할때가아니라, 내가 미처 모르는 사이 조용히 옵니다. " ( 칼로저스, 심리학자)
일기장속의 나와 대화하는 나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지나가버린 어제도 오지않은 내일도아닌, 오늘 하루만 잘 살아내면 된다는 마음으로 지내고 그날 그날의 일상을 일기장위에 적어나갔습니다. 출산후 바닥으로 떨어졌던 체력이 다 돌아오지 않았지만 회사에 복귀했고, 친정식구들과 남편의 도움을 받으면서 아이를 키웠지요.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아이와 놀아주기도 하면서 아직은 온전치 못한 몸이지만 아기를 돌볼수있는 일들을 차츰 더 늘려갔습니다. 어느새 시간은 가을을 지나고 겨울이 되었어요. 영하의 기온속에 그해의 달력도 한 장만 남았고, 몸과 마음을 녹여줄 따듯한 난로가 간절해지는 시간이기도 했지요.
'날 바라봐주는 시선 하나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고달픈 시간들이 이어지고 쫓기며 사는 시간들속에 어느날, 간절함이 생겼습니다. 그 간절함은 나의 애씀이, 나의 하루가 조금 더 따듯하게 기억되기를 바라서였을까요.
일기의 관점을 바꾸어보았습니다.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내가 나를 바라보는 눈으로 기록하면 어떤 느낌일까. 나를 온전히 바라봐주는 따스한 눈길 하나를 만들어야했어요. ‘그녀’의 하루와 ‘그녀’의 마음을 따라가 바라봐주는 포근한 그런 시선. 덜 돌아온 체력으로 추운 겨울 이른 시간에 출근 준비를 하고, 회사에 출근해서는 주어진 일들을 하고, 틈틈이 다돌아오지못한 체력을 위한 회복 운동을 하면서 퇴근한 후에도 아기를 돌보는 그녀. 그런 그녀를 바라봐주는 시선 하나를 만들어 담담히 그녀의 하루를 일기장에 적어나갔습니다.
촉촉하고 보드랍고 따순것이 , 서서히 번지고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어요.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시선을 바꾸고 문장이 바뀌자 감정이 몰려왔습니다. 변화가 느껴진건 그이후부터였습니다. 몸과 마음이 더 가벼워진듯했지요. 봄이 아직 오지않았지만, 세상이 좀 더 화사해보였어요. 내앞에 주어진일들,내앞의 힘들어보이던 상황들이 그럭저럭 해볼만해졌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아이한테도 회사일에도 더 집중할수있었습니다.
책상앞에 앉아 일기장을 펼쳤습니다. 나와 일기장사이에 따스한 시선 하나를 두었습니다. 천천히 일기를 써내려갔습니다. 나를 바라봐주는 시선으로 그날의 일기를 기록하던 순간이 아직도 머리속에 기억납니다.그때부터 많은것이 달라졌습니다.
그 시선은 '옳다, 그르다'' 좋다 , 나쁘다 '' 이래야한다, 저래야한다" 판단하거나 충고하지않는 눈길이었습니다. 나를 있는그대로 수용하고, 존중하고, 사랑해주는 눈길이었습니다. 그때 그 눈길이 가장 간절했구나, 하고 일기를 써내려가면서 느꼈습니다.
아이가 아주 어릴적에 씌여진 그날들의 일기를 지금도 가끔 다시봅니다. 이런 시간을 지나서 지금의 나에 이르렀구나. 나를 다시 숨쉬게한 그 일기에 오롯이 담긴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본건 그 후로도 많은 시간이 흐른뒤였지요.
3인칭은 관찰자의 시점입니다. 나와 내 앞의 일들에 거리를 두고 보는 눈입니다. 한발짝 떨어지면 좀 더 객관적으로 볼수있습니다. 내면의 감정에 갇히지않으면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 , 새롭게 해석할 여지를 주는눈이 제 3자의 눈입니다. 이 눈은 우리가 앞에 놓인 문제들을 잘 해결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날씨가 좋은 마음에 여유가 생긴 어느하루, 극장에서 영화를 한편보았지요. 마이크리 감독의 <내말좀 들어줘>는 나이든 부부와 일자리가 없는 아들의 얘기입니다. 취업을 앞둔 자녀들을 둔 이삼십년 결혼생활을 한 중년 부부의 집이라면, 공감이 가는 풍경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이 없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은, 아무데서나 끝없이 잔소리를 하고 악담을 하고 악다구니를 쓰지요. 자신의 문제에 갇혀있는 남편과 아들은, 같이 살지만 귀기울여 듣지않고, 제대로 보려고 하지않습니다.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버거워”라는 영화의 홍보문구처럼 , 서로에게 기대고 싶지만 가족들은 물과 기름처럼 겉돕니다. 남편을 남의 편이라고부르고, 아내를 잔소리쟁이라고 생각하는 보통의 가정의 모습들이 스크린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남의 집 사정을 관찰자 시점으로 보다보니, 각자의 어려움과 외로움이 더 잘보였지요.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는 아들과 엄마를, 아들과 아빠, 아내와 남편을 이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했습니다. 오래된 익숙함 속에 진짜 소통이 사라진 장면들이 , 관찰자의 시점으로 보니 눈에 보였습니다. '필요한건 잔소리보다는 공감이구나'. 객관적 입장에서 본다는건, 이렇게 문제를 잘 드러내주고, 해결책까지 보여줍니다.
삶은 감정과 상황 관계가 뒤얽힌 꽤나 복잡한 고차 방정식입니다. 나이가 들고보니, 이 방정식을 풀기위해서 꼭 필요한게 이 관찰자의 시점이었습니다. 우리가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쉽게 조언을 해주거나, 문제를 해결해줄수있는건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눈으로 상황을 볼수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단순하고 담백하게 만드는 '또다른 눈'은 삶을 살아가면서 수시로 필요합니다.
살아가는 일은 때때로 버겁습니다. 대부분의 삶은 내앞에 닥친일을 처리하느라 허덕대기 쉽지요. 존재 자체로 존중받고 사랑 받는일은 어릴적 부모품안에 잠시 머무를때 정도입니다. 그 이후엔 눈앞의 의무와 숙제가 끝없이 기다릴뿐이지요. 공부를 하고 입시라는 관문을 지나는 어린 시절이 지나면, 모든이에게 밥벌이의 괴로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후에도 결혼과 육아까지, 녹록한일은 없어보입니다. 온전한 책임감과 부담감에 짓눌리기 십상입니다. 아이가 대학을 가고나면 나의 숙제가 끝나는줄 알았는데, 착각이었습니다. 나의 경우, 연로하신 부모님의 간병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숨가쁘게 달려온 인생의 시간 속에서 나름대로 길을 잃지않을수있었던건, 30년간 쓴 일기덕분입니다.